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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Feb 15. 2024

후지산 관광 2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 오이시 공원으로

신주쿠 역에서 두 시간 넘게 달려 가와구치코 역에 도착했다. 각기 다른 표를 가진 사람들이 역무원에게 기차표를 확인받고 개찰구를 나왔다. 역 바깥으로 나오자 방금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듯 재빠르게 움직였다. 우리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것처럼 역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S는 기차에서 내리면 후지산이 턱 하니 눈앞에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맑은 날은 바로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역에 내리면 자연스레 후지산을 향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예상된 시나리오에 후지산의 방향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은 아예 없었다. 막막했다. 역 근처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자전거를 못 타니 소용없는 정보였다. 

역 앞에는 버스를 타는 곳이 여러 개였다. 우왕좌왕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오이시 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보았다. 두리번거리는 사이 버스 여러 대가 떠났고 역전에 붐비던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스태프 조끼를 입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큰 안내판에 그려진 지도의 레드라인 코스를 따라가라고 했다.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는 15분 후 도착이었다. 지도를 보니 오이시 공원 가는 코스에 로프웨이가 있었다. 로프웨이는 호수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케이블카와 비슷한 것이다. 로프웨이에 올라도 어차피 후지산은 보이지 않을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는 길이나 오는 길에 들러보자고 했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은 우리는 우선은 오이시 공원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30분 남짓 달리는 동안 S는 꿀잠을 잤다. 기차에서보다 좀 더 잘 자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 체력이 약간은 회복되었는지 오이시 공원에 도착하자 S는 활기를 찾았다.      


S 덕분에 나도 약간 상기되어 본격 관광을 하려고 했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은 더욱 흐려졌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찻길을 건너자마자 후지산 유튜브 라이브 영상에서 보았던 붉은 나무들이 보였다. 급히 눈으로 주변을 휙 둘러봤다. 여전히 후지산은 오리무중이었다. 사진으로 봤던 후지산을 떠올리며 추측해 봤으나 어느 방향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낮고 동글동글한 나무들이 줄지어 선 쪽으로 가니 제각각의 농도로 붉게 바래진 나무들 사이에서 멋진 기타 연주 소리가 들렸다. 매점 앞쪽에 기타를 든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훌륭한 솜씨라고 생각하며 다가가자 재킷에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보였다. 더 가까이 가서 손동작을 보고는 연주하는 척만 할 뿐임을 알아차렸다. 사람들 앞에서 너무나 진지하고 당당하게 엉터리로 기타 치는 시늉을 해서 우리는 웃었다. 후지산은 머리카락 하나도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날은 좀 쌀쌀했는데 S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다.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호수 가까이로 내려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오리들을 구경하고 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공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유튜브 라이브 영상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찾아보자고 했던 생각이 났다. 핀란드의 산타 마을에 있는 라이브 영상 카메라 앞에서는 직접 손을 흔들어 인사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카메라를 찾으면 손을 흔들며 가족에게 전화를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영상에 나오는 각도로 둘러봐도 카메라는 찾을 수 없었다. 영상의 배경과 비슷한 곳은 있었지만 똑같은 곳은 없었다. 우리가 못 찾는 것일까, 어디 숨겨져 있나, 주변을 크게 돌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후지산이 안 보여서 더 감을 못 잡았던 것일까. 우리는 카메라 찾기를 포기하고 꽃이 모두 져버린 을씨년스러운 공원을 좀 더 둘러본 뒤에 기념품 가게로 향했다.

후지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사진 속 모습으로 달래고자 작은 마그네틱을 샀다. 카페나 식당, 앉을 곳을 찾아보아도 맘에 드는 곳이 없었다. 사람은 많고 앉을 곳은 적었다. 우리는 역 주변으로 가서 식당을 찾기로 하고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신주쿠로 가는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후지산이 보이는 공원에서 한참 놀 생각으로 시간을 길게 잡았던 것이다. 로프웨이에 가더라도 시간은 넉넉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후지산이 전혀 안 보이는데 호수 위로 올라간다고 뭐가 보일까? 그리고 로프웨이에도 대기줄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역으로 가는 버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로프웨이를 빠르게 포기했다.      


2. 다시 가와구치코 역으로

우리가 줄을 섰을 때 버스는 10분 후에 도착 예정이었고 앞에는 이미 사람이 꽤 많았다. 줄 선 사람의 수로 봐서 이번 버스에는 우리가 앉을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 시간도 많으니 한 대를 보내고 그다음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도 10분 이상 지체되어 도착했다. 길에 차가 많이 밀리는 모양이었다. 다음 버스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차례대로 버스에 오르고 우리 앞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탔다. S는 “우리도 그냥 탈까요? 조금 서서 가죠 뭐.”라고 했다. 나는 오는 동안 걸린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편하게 앉아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S와 다른 얘기에 빠져 있던 터라 이후의 일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처럼 밝은 목소리로 제안하는 S에게 안 된다고 하기도 그래서 나는 콜을 외치고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이 선택은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

우리가 오른 뒤에도 사람들은 계속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가득 찼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다음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우리의 가벼운 예상과 달리 역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가득 찬 채로 출발하여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려는 사람들은 많았다. 거리에 차도 많아서 차는 밀리고 그럴수록 타려는 사람은 늘어났다. 버스 기사가 다음 차가 금방 온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손님들은 계속 올라탔다. 기사가 무전을 계속하더니 급기야 뒤에 있던 차가 우리가 탄 차를 추월했다. 뒤차가 앞서 가서 승객을 태우려는 것이었다. 다음 차를 기다렸다면,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출렁거리는 버스에서 다리에 얼마나 힘을 주고 서 있었는지 버스에서 내리는데 무릎관절에서 꺾어지는 소리가 났다. S와 나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좀 전의 선택이 우리에게 얼마나 치명타였는지 알았다.      

후지산은 그림자도 못 보고 두세 시간 만에 원점인 가와구치코 역으로 돌아왔다. 우선 식당을 찾아보았는데, 역 근처에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식당에는 모두 대기줄이 있었다. 역을 지나친 곳에 식당 간판이 보이기에 갔더니 문을 닫았고 길 건너 카페 한 곳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곳에 자리가 있기를 기대하며 들어갔는데, 다행히 식사가 되는 카페였다. 문 앞에 자전거가 몇 대 세워진 것을 보니 자전거 대여를 하는 카페인 모양이었다. 식사 메뉴는 몇 개 되지 않았는데, 가격은 비싼 편이었다. 우리는 파스타를 시켰다. 후지산까지 와서 파스타라니, 그것도 카페에서. 우리는 서로의 속마음을 읽은 듯 마주 보며 웃었다.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다. 뭐 특별한 것을 먹으려니 생각은 안 했지만 뭔가 아쉬운 맛이었다. 나는 파스타를 먹으며 다음 기차 시간을 검색했다. 우리가 예약한 4시 50분 기차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이전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마침 내가 검색하던 시간이 이전 기차의 출발시각이었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에 봤더라면 바로 신주쿠로 돌아갔으려나. 버스를 타고 역으로 오는 동안 검색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 끼인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특히 두 손은 손잡이를 꽉 잡고 있기만도 버거웠다. 우리는 천천히 밥을 먹은 후 역으로 갔다.

매표소 앞에서 우리가 기차시간표를 올려보고 있자 스태프가 다가와서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나는 우리 표를 보여주며 그 전의 기차가 있는지 물었다. 직원은 매표소 창문에 임시로 써 붙인 안내와 우리 표의 시간을 번갈아 보더니 앞차는 방금 출발했다. 아뿔싸. 내가 본 기차 시간은 정시였는데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좀 전에 출발한 것이다. 밥 먹고 검색하던 시간에 역에 왔더라면 기차를 탈 수 있었는데. 생각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아서 낭패를 봤다. 어차피 기다릴 것이었지만 열차가 방금 출발했다는 말을 들으니 나는 뭔가를 놓친 듯 매우 아쉬웠다. 

그럼 원래 가기로 했던 시모요시다역에 가볼까. 시모요시다 역은 가와구치코 바로 전역이었다. 날이 좋으면 후지산을 배경으로 사진이 멋지게 나온다는 포토 스폿이 있는 곳이다. 물론 날이 흐려 그곳에 가도 후지산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 반이상 남은 시간을 멍하니 보내기보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4시 반 전에 시모요시다에 가는 기차는 있지만 가와구치코로 돌아오는 기차는 없다고 했다. 기차의 노선상은 시모요시다에 들렀다 후지산역을 지나 가와구치코로 오는데 그게 회선의 느낌이어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 예약해 둔 기차도 놓칠 위험이 있었다. 모험을 한번 해볼까 하다가 오늘 유난히 되는 일이 없는데, 가는 기차까지 놓치는 불행은 막고 싶어 그냥 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매표소 옆쪽에 대합실이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니 꽤 큼지막했다.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 옆에는 작은 카페와 겸한 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식당을 찾지 못해 역에서 거리가 있는 카페에서 파스타를 먹었는데, 역사 안에 식당이 있던 것이다. 처음 기차에서 내려서는 어리바리 하느라 역사 안에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왜 이렇게 시야가 좁은 것인지. 역 안을 조금 둘러봤더라면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 텐데. 하다못해 오이시 공원에서 와서 버스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던 역사의 문을 열기만 했어도. 나란 사람 시야가 좁고 방향치라서 길 잃기가 다반사지만 이렇게 한 치 앞도 못 보다니 정말 어리석기가 짝이 없구나. 한 발만 들어갔더라면 알 수 있었을 일들, 이와 비슷한 수없이 많은 삶의 얼룩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실망시켰다.

카페에서 블랙티를 주문하고 식당 한쪽 테이블에 앉았다. 말할 수 없이 자신이 싫어졌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후지산으로 오는 기차표를 교통패스로 예약할 때부터일까. 날씨가 안 좋을 것이라는 기상예측을 보고도 고집을 부렸던 때일까. 기차 패스를 사느라 들인 수고를 포기하고 날이 좋으면 버스를 타기로 선택의 여지를 두었더라면? 아니 첫날부터 후지산에 왔더라면? 머릿속으로 아무리 다른 선택지를 골라 봐도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체념한 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기념품샵 앞에서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과 가챠기계 앞에 설레는 눈빛으로 서 있던 아이들. 각자의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왜 그들처럼 즐겁지 못한가. 고작 여행인데, 오늘의 실패가 삶의 실패도 아닌데 나는 생각의 미로 속에서 많이 지쳤다. 더 지치는 일은 아직 오늘의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기차가 출발한 뒤 오늘 만나기로 한 지인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도쿄로 돌아가 만나기로 했기에 시간 약속을 해야 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고 해서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은 터였다. 아침에 신주쿠역 코인 라커에 넣어 둔 선물 때문에라도 만나긴 해야 했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 먼저 아무 데나 들어가 있으라는 답이 왔다. 하지만 우리가 탄 기차가 연착되어 예정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어졌다. 와중에 선생님은 일이 안 끝나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숙소에 가 있으면 늦더라도 그리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못 만나게 될 때를 대비해 신주쿠역에 두고 온 선물을 선생님께 직접 꺼내 가시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받은 영수증을 자세히 보니 카드로 결제했을 때는 결제한 카드가 있어야 코인 라커를 열 수 있었다. 현금으로 결제했더라면 인증번호만 있으면 누구라도 꺼낼 수 있었을 텐데. 게다가 24시간 사용이 아니라 만약 오늘 밤 안으로 꺼내지 않으면 추가 결제금을 내야 했다. 선생님을 만날 수 없다면 이제 방법은 두 가지였다. 오늘 선생님의 퇴근길 근처 라커에 현금으로 결제하여 선물을 넣어두는 것과 오늘은 내가 들고 갔다가 내일 라커에 넣는 것.

선생님께 퇴근길에 어느 출구가 가까운지 물었지만 너무 바쁘셔서 답을 듣지 못했다. 나는 아무 라커에 현금으로 결제하여 다시 넣을까 하다가 숙소로 들고 가기로 했다. 시간은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이라 지하철은 매우 혼잡했다. 커다란 종이가방에 넣은 약과와 누룽지가 이 날따라 야속했다. 얘들이 무슨 죄라고.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걸 들고 비행기 타느라 고생, 신주쿠 역까지 들고 전철 타고 오느라 고생, 다시 숙소로 지고 가느라 고생. 아무리 부피만큼 마음이 들어있다고 포장하려 해도 이건 마음에 비해 수고와 품이 너무 드는 일이었다. 이번에 탄 전철은 신주쿠에서 이케부쿠로 역까지 한 정류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열차에서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며 나는 가방을 더욱 끌어안았다.      

숙소로 가는 동안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정말 맘먹은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매우 고단했는데 아무것도 한 것 같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래야 뭐라도 한 것처럼 흡족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하루를 공치는 기분이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숙소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었다. 어제 갔던 선샤인 영화관에서는 오전에만 한 차례 상영했고 토호 시네마에서는 저녁에 상영했다. 우리는 전철에서 내려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가서 표를 샀다.


저녁 먹을 시간이 빠듯하여 영화관 1층의 상가인 스테이크 집으로 들어갔다. 작은 화로에 올린 스테이크를 열심히 굽고 있는데 오늘 만나기로 했던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지금이라도 괜찮으냐고 하셨는데 나는 영화표를 사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처 얘기하지 못했던 선물이야기를 했다. 신주쿠 역에 두고 오려다 다시 들고 왔다고, 내일 돌아가는 길에 이케부쿠로 역에 있는 라커에 넣어두고 가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내일 아침에 우리 숙소 근처에서 일이 있다며 우리가 조식 먹기 전에 잠시 짬이 난다면 호텔에 들르겠다고 했다. 결국 이 커다란 짐보따리(a.k.a 선물)는 아침에 우리와 함께 나와 밤에 다시 우리와 함께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토호 시네마의 상영관은 선샤인보다는 약간 소박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의 지역 CGV 영화관 정도라고 할까. 이곳에도 매점 옆에서 영화 굿즈를 팔고 있었다. 상영시간에 쫓겨 영화가 끝나면 사야지 하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자 마지막 타임이라 그런지 매점 문은 닫혀 있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나는 개봉하는 날 집 근처에서 봤다. 도쿄에서 자막 없이 처음 보면 전혀 모를 것 같아 예습하는 느낌으로 본 것이다. 덕분에 대강의 내용은 알기에 구석구석 숨어있는 그림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자막이 없으니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영화가 끝나고 여전히 커다란 선물 가방을 멘 채 숙소로 돌아가면서도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영화라도 보지 않았으면 오늘의 실패를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며 화가 났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믿은 것들의 대부분은 시간에 묶여 있다. 후지산을 보러 가려고 예매한 기차의 시간은 거꾸로 우리의 하루를 옭아맸다. 출발시각에 맞추느라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느라 의미 없이 멍한 시간을 보냈다.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왜 나는 자꾸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드는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후지산이 보이지 않는 오이시 공원에서 기타 치는 시늉을 하던 할아버지처럼 벤치에 앉아 그 시간을 즐겨도 됐을 것이다. 버스에 자리가 나길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기차역으로 돌아와도 됐을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더라면, 내가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 외에도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정해 둔 여행의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라고 여겼다. 뜻한 대로, 예상한 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그것을 즐거움으로 여겼더라면 더 재미있는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모두 나의 조급함이 문제였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획된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달리는 기차처럼 시간에 맞춰 목표지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앞으로만 달린 것이다. 여행조차도. 여유를 찾겠다고 여행을 떠나서도 나는 습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마히토처럼 할아버지가 물려주려는 세계를 거절한다면, 사회가 해야 한다고 정해둔 기준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찾는다면, 어디에도 길은 있을 것이다. 꼭 집에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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