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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an 24. 2020

시댁이 가까운 게 좋은 건가요?

"명절에 어디 안 가세요?"


명절이면 인사로 주고받는 말이다. 예전에는 명절에 시댁 가느냐는 물음을 돌려한 것이었다. 이제는 명절에 여행을 간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여행 안 가느냐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아직 우리 집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지만.


그런 질문에 나는 "아뇨, 시댁이 가까워요."라 답한다.

'아뇨'까지만 듣고는 성급하게 '좋겠다' 반응을 한 사람은 내 뒷 말을 듣고는 묘한 표정을 짓곤 다.


이제는 어지간히 서로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 속에만 있다 보니 그런 질문을 듣는 일이 뜸해졌는데 어제 오랜만에 또 한 번의 같은 질문을 들었다.


내 대답을 듣고 반색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4월에 식을 올리는데요, 신혼집에서 시댁이 가까워요. 근데 어때요? 그거 좋은 건가요?"


나는 늘 오가던 패턴과 다른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시 뜸을 들였다. 글쎄요. 시댁분들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저는 시부모님이 힘들게 안 하셔서 좋아요. 근데 너무 가까우면 언제든 오실 수 있다는 단점은 있어요.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하고 나서 내내 그 질문을 곱씹었다. 시댁이 가까워서 좋을까? 물론 좋은 점은 있었다. 하지만 좋기만 하지는 않았다.




시댁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십 분이 안 걸린다. 빠른 걸음으로 오분이면 도착할까.


아이들이 아기일 때 아버님은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자주 시장에 가자고 전화를 하셨다. 당신의 손주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걷는 것이 그렇게도 뿌듯하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장을 봐서 아버님과 함께 시댁으로 가서 밥을 해야 했을 것이고 그게 또 그렇게 싫었다. 내가 육아에 지쳐 있을 때는 어린 아기라서 봐 주실 수는 없었고 늘 내가 함께 시댁으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좀 자라 엄마와 떨어져 잘 수 있을 때부터 아이들은 할아버지 댁에서 주말을 보내고 왔다. 덕분에 주말이면 아이들을 시댁에 보내고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힘든 시간이 지난 뒤 고마운 시간이 있었다.


가까이 사는 시부모는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이 가장 불편하다고 했다. 우리 시부모님은 다행히 오시기 전에 전화라도 하셨고 자주 오시지는 않으셨다. 대신 우리를 부르기는 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내가 일을 하느라 하원 후 시간을 아버님께 맡겼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집 문을 열 수 있는 카드를 드렸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없을 때는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 중학교에 들어가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자주 오신다. 반찬을 해 놓고 가져가라고 하면 나중에 간다고 하니까 집에 있는지 확인만 하고 아예 가져다주신다. 그나마 갈수록 전화도 없이 불쑥 오시는 날이 잦아졌다.


가끔은 내가 외출해 있는데 반찬 가져오셨다고 어디냐고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집에 없을 때에 맞춰 어디 갔느냐고 묻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연세가 드시니 그런 배려의 마음은 사라지는 걸까 싶어 아쉽다.


아이들은 여전히 주말에 시댁에 가는데 어쩌다 한번 안 가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전화가 온다. 아이들에게 못 간다고 할머니께 미리 전화를 하라고 해도 내게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할 때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시금치에 '시'자도 싫다는 다른 이들의 얘기 앞에서 나의 이런 불만을 얘기했다간 눈총을 받는다. 반찬 안 해줘도 되니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반찬은 감사히 잘 먹는다. 가끔 가족 모두 싫어하는 반찬을 너무 많이 주실 때는 난감하지만. 시댁이 멀어 명절 때마다 오며 가며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말 앞에선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 한다. 명절날 서울에 있는 친정에 세 시간 걸려 간 것 말고 내게는 그런 경험이 없으니. 그들의 노고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덜 힘든 것이 맞다.




시댁이 가까운 것 때문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좋은 점도 많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댁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도, 가까워도 아무 상관없다는 걸, 모두가 그런대로 장단점이 있다는 걸, 시부모님이 아무리 좋은 분들이어도 편하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어렵고 불편할 것이다. 그렇기에 명절에 어디 안 간다는 말에 좋겠다고 말했던 사람이 곧 내게 묘한 눈빛을 보냈던 것이 아닐까.



명절 연휴의 첫날. 시댁이 가깝다는 것은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집에서 글을 쓰고 내 맘에 드는 명절 특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을 하나 더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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