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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Feb 04. 2020

철없는 엄마, 철없는 남편

병원에서


MRI 검사실 들어갔다. 검사하는 동안 소리가 시끄럽다며 귀마개를 준다. 검사는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고, 안에서는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기침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눕자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동그란 통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긴장이 되어선지 내 숨소리가 불규칙해졌다. 배 위에 올려놓은 손이 숨을 들이쉬고 내 쉴 때마다 배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느껴졌다. 기침도 하지 말라는데, 내 가슴이 너무 빠르고 세게 뛰어서 움직임이 방해될까 걱정일 지경이었다.


 년 전, 아이의 무릎을 정밀 검사했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MRI 검사실에 내가 따라 들어갔다. 촬영하는 동안 움직이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듣고 나는 아이에게 당부했다. 검사받는 동안 눈을 감고 가만히 잘 수 있으면 자라고 했었다. 그때 내가 아이에게 한 말이 얼마나 무지한 일이었는지 이 좁은 통 속에 들어와 보니 알겠다. 아이는 통에서 나와 한숨을 쉬며 '엄마,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잘 수는 없었어요' 했다. 내가 겪어보니 그때 아이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느꼈을 두려움이나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이기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함부로 아이에게 별일 아니라 말했던 내가 얼마나 한심하던지.


지이이잉


다-다-다-


타타타타타


커다란 소음이 끝나면 귓속에서 삐-소리가 난다. 잠시 조용하기에 끝났나 싶으면 다시 시작되는 굉음 속에서 나는 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말을 했던가 반성했다. 잠깐 참으면 되는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에게 알은체를 한 내가 한심하고 철없게 느껴졌다.




남편은 검사와 치료를 위해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하루는 누가 해주는 밥 먹을 수 있겠네'한다. 나는 작년 가을쯤부터 혼자 명상원이나 템플 스테이에서 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며칠 만이라도 누가 해주는 밥 먹고 아무 일 안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남편은 그 말을 기억해냈던가 보다.


병원에 입원하여 그런 시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됐든 비슷한 일인가. 단 하루뿐이지만 밥 걱정 안 하고 청소 빨래 설거지 신경 안 쓰고 시간 되면 밥을 주는 시스템 아래 있게 되었으니. 호텔은 아니지만 일상적 의무가 없는 곳이니 몸은 조금 편하려나. 모르기는 매한가지인 나도 그런 생각을 조금은 했더랬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만 하루는 생각만큼 편하지 않았다. 검사받느라 오르락내리락, 진료와 치료를 받기 위한 대기 시간까지. 병실 침상에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었다. 시간이 뭉텅뭉텅 잘려 나가는 것 같았다. 지칠 때쯤 저녁 시간이 되었다. 남편을 집으로 보내고 저녁을 먹은 뒤 야심차게 가져온 두꺼운 책 두 권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기도 전에 맞은편 환자의 보호자가 병실의 불을 일찌감치 꺼버렸다.


맞은편 환자는 할머니였는데 보호자는 할머니의 손주인 것 같았다. 할머니를 얼마나 살뜰히 살피는지 환자 네 명이 있는 병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끊이지 않는 말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잠시라도 그 말들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어폰을 끼우고 누워 있었다. 얼마 후 할머니가 잠이 들자 그 보호자는 병실의 불을 꺼버렸다. 다시 켜라고 하기도 뭐 해서 나도 일찍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오후 8시가 넘은 시간. 간호사 샘이 병실로 들어와 벌써 불을 껐느냐고 했지만 다시 불은 꺼졌다. 나는 계속해서 잠을 자보려고 버티다가 9시가 넘어서 결국 일어났다.


나는 책과 텀블러를 챙겨 복도로 나갔다. TV가 있는 휴게실에도 불은 꺼져 있었다. 다른 쪽 병실 복도로 가니 불이 환하고 마침 의자 몇 개가 있었다. 거기에 앉아 책을 펼쳤다. 혼자 불편한 자세로 앉아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었을까. 허리가 아파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병실은 어두웠고 간호사 샘은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드나들었다.


어딜 가나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내가 잠을 잘 수 없었다. 잠 잘 자는 걸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라 자부하던 나인데.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편하게 주는 밥 먹고 쉬다 오라는 남편의 말이 얼마나 철없는 말인지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것도 역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겉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점심은 안 먹고 퇴원하기로 했는데 치료가 늦어져 퇴원 시간이 오후로 미뤄졌다. "○○○님, 집에 가셔야죠!"라는 간호사 샘의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검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에게 금방 끝날 거야, 별 거 아니야 라고 했던 철없는 엄마나. 병원에 입원하는 아내에게 그냥 마음 편하게 푹 쉬다 오라고 했던 철없는 남편이나. 경험하지 못해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쉽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 말의 무거움을 모르지는 않아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충고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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