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고 쌉싸래한 커피가 필요한 오후, 큰 숨을 들이쉬며 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삶이 무겁다 느껴질 때, 하루의 시작을 앞두고 잠시의 쉼표가 필요할 때 커피를 내린다. 뜨거운 증기 따라 올라오는 커피 향에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삶의 고뇌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비록 커피 한잔이 삶의 무게를 덜어내줄 수는 없을지라도 고뇌의 무게 1g쯤은 덜어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또르르- 내려지는 커피 방울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본다. 아는지 모르는지 첫 번째 부은 물이 ‘역시, 답답했구나. 기댈 곳이 필요했구나.’ 스스륵- 한 마디를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또다시 두 번째 물을 붓는다. 더 정성스럽게, 더 천천히-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현실의 삶으로 조금이라도 천천히 가겠다는 의지를 남몰래 담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축 젖은 커피에 열기를 더해본다. 축 젖은 어깨에 삶의 무게가 더해지면, 커피가 내려지듯 내 마음의 바다에도 진한 에스프레소가 내려앉는다. 그렇게 커피가 모두 내려지고 난 후 커피잔에 한 잔의 커피가 차올랐다.
삶의 무게를 덜겠다는 마음을 눌러 담아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쓴다. 삶의 무게를 꾹꾹 글로 적어 내리고, 그럼에도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을 기록해낸다. 쌉쌀한 커피 한 모금, 씁쓸한 인생사 한 줄씩 써 내려가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 본다. 온몸의 세포 사이사이, 가득 차오르는 커피 향에 의지하며 마음을 기댄다.
커피와 글로 위안받는 시간을 지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조금씩 웃게 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커피를 내렸더니 글이 나왔다.
커피를 내렸더니 삶의 무게가 덜어졌다.
그래서 오늘도 커피를 내린다.
예쁜 드립백의 색감만으로도 마음의 힐링이 찾아온 오후- @블랙말린
<반창고 문장> 여러분의 마음에 문장으로 반창고를 붙여드립니다.
오늘의 아픔이 모두 가라앉고 나면 삶이라는 커피잔에도 진한 풍미의 에스프레소만 남기를.
쓰디쓴 어둠의 시간들이 내 시간을 갉아먹지만 않았기를.
공기 사이로 스미는 커피 향처럼 '나'라는 사람의 풍미도 진하게 우려 나와 퍼졌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