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본다. 나를, 내 마음을. 내 덜 된 인생을.
나란 인간, 리모컨을 냉장고에 넣지 않을 뿐이지. 참 잘 잊어버리고, 참 아무렇지도 않아한다. 난시가 심해서 평소 낮에는 렌즈를, 밤에는 안경을 낀다. 그런데 아주 종종 내 눈을 잊어버린다. 안경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렌즈 빼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새벽 12시 42분. 지금 시간에는 안경으로 눈을 바꿔줘야 그다음 날의 눈이 살아 숨 쉴 수 있는데 안경을 잊어버렸다. 3일째 행방불명이다. 장소는 집.
20대 때에는 렌즈 낀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잠들기도 하고, 그대로 일어나서 새로 일회용 렌즈를 또 끼는 웃지 못하는 일들도 많았다. 들어는 봤는가 '한눈에 이중 렌즈-'라고. 대학 때부터 친구들은 '또 안 빼고 잤어? 일주일이나 렌즈를 안 빼는 게 말이 돼?'라며 한 소리씩 했다. 내가 렌즈를 꼈는지, 안 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아침에 일어나면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자체 시력 테스트를 해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며 눈 건강이 걱정되어 일주일씩이나 렌즈를 끼고 자거나 렌즈 빼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안경을 찾지 못해 집에서는 안갯속을 걷는 일이 종종 있다.
내 안경에는 야광 물질을 발라놔야겠어. 밤에라도 찾을 수 있게 말이야.
내 안경은, 그리고 어린 시절- 마냥 해맑았던 내 마음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 같긴 한데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사라지고,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영영 못 찾을 것처럼 보이지를 않아 막연하게 두렵다. 분명 나타나긴 할 텐데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안경이, 맑은 마음이 손에 잡히질 않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
다음에 안경을 만나면 그 녀석을 꼭 붙잡고 반드시 야광 물질을 안경테와 안경다리에 덕지덕지 발라둘 테다. 도망가지 못하게 '내꺼'라고 표시를 해둘 테다. 다음에 또 사라지더라도 고요한 밤이 되면 결국 내 눈에 제일 잘 띌 수 있도록 말이다.
다음에 온전하게 평온한 내 마음을 만나게 된다면 그 녀석을 꼭 붙잡고 반드시 야광 물질을 치덕치덕 발라둘 테다.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잡고 쓱싹쓱싹 '내꺼'라고 표시를 해둘 테다. 다음에 또 사라지더라도 고요한 밤, 소란함이 걷히고 세상이 모두 잠잘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면 결국 내 눈에 반짝- 띄어 내 마음속으로 다시 손 잡아 데리고 올 수 있게 말이다.
이번에는 용케도 오래- 꼭꼭 숨어 나를 골탕 먹이고, 내가 펑펑 우는 동안에도 코빼기 하나 내비치지 않는 괘씸한 녀석이지만 내가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저 멀리까지를 훤히 볼 수 있게 해 주는 내 눈- 그리고 내 평온한 마음-을. 나는 아직 포기하지 못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 어둠 속에서 전기 스위치를 하나씩 켜고 끄며 다시 한번 안경을 찾아본다. 소파 밑에도 엎드려 들여다보고, 발길이 닿았던 모든 곳들을 훑으며 사라진 웃음과의 숨바꼭질을 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
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못 찾겠다.
평온한 마음을 찾는 숨바꼭질은 때로 외롭고, 때로 슬프다. 어린 시절의 숨바꼭질과 다르게 서글프다. 지금 내 나이에서는 찾을 때도 된 것 같은데, 보일 때도 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면 환한 웃음을 방긋- 터트리며, 짠- 하고 잃어버렸던 '밝은 마음이'가 나와 나를 놀라게 해 주기를 내심 바라본다.
그래 봐야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그래 봐야 집 안에 있을 거라고, 그래 봐야 내 마음 안에 있을 거라고 나를 다독인다.
덜 된 나를 끌어안고 사는 인생은 사실 후덜덜하다. 잘 잊어버리고, 잘 울고, 잘 치이고, 잘 못 웃는 '나'란 아이를 데리고 사는 일은 말 그대로 후덜덜-이다. 하지만 그 녀석을 찾아야 조금 더 웃어질 것 같고, 그 녀석이 옆에 있어야 내가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밤, 당장 눈이 너무 건조해져서 서랍 속 오래된 안경을 꺼내어 쓴다. 당장은 적당히 내 마음과 타협하며, 적당히 아픔을 끌어안으며, 적당히 잊고, 적당히 울며, 적당히 웃고, 적당히 먹으며, 적당한 마음으로 그냥저냥 지낸다. 누군가 내게 '요즘은 괜찮아?'라고 물으면 적당히 대답한다.
그냥요, 그럭저럭- 그렇죠. 뭐-
적당히 살기로 했다. 덜 된 아픔을 끌어안고 살기 위해서는 적당히 잊어버리고, 적당히 잘 챙겨 먹으며, 적당히 웃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적당히 괜찮아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안경 찾는 일을, 내 마음 찾는 일을 멈추지는 않는 오늘을 보낼 테다.
행복은 가까운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그 희망이 나를 웃게 할 테니.
믿어본다.
나를, 내 마음을. 내 덜 된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