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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Jan 10. 2023

안녕, 나는 끝물- 떡볶이라고 해.

쫄지마!

안녕 나는 떡볶이야.


사각 떡볶이판 구석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졸아붙은 국물 이불을 덮고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는 이 시간을 참 좋아해. 주인아주머니도 주황색 플라스틱 주걱으로 나를 석석 긁으며 마지막 손님을 함께 기다리는 시간이지. 고요한 적막이 밤공기를 말캉하게 채우는 시간, 마지막 손님에게 온갖 정을 다 끌어모아 덤을 듬뿍 얹어주고는 주인아주머니도 집으로 갈 채비를 해. 언 발을 녹이며, 하루의 피로를 모두 내려두시겠지.


주황색 플라스틱의 건져올림을 요리조리 피하는 수영 놀이도 하루종일 잘 즐겼고, 오늘 하루 따듯하게 잘 보냈으니 이만하면 최고의 하루였어.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훈장처럼 누군가의 검은 봉지에 덜렁덜렁 이끌려 그의 집에 도착했더니 집에 있던 식구들이 나를 활짝 열어 반겨주지 뭐야. 종종 만나면서도 처음 본 사이처럼 어찌나 반가워해주는지.


이래서 내가 끝물을 좋아한다니까.


찐득하게 응축된 빨간 양념이 내 몸 사이사이로 배어들었으니 얼마나 쫄깃하게 맛있어졌을지, 얘기 안 해도 모두 알지? 생선계와 육류계에 어두육미(魚頭肉尾)가 있다면, 떡볶이 세상에서는 끝물짱맛-이라는 단어가 있다니까.


삶이 때로 지루하고 속상해도 쫄지마! 우리 삶도 오래 졸여지는만큼 꾸덕꾸덕해지고 더 맛있어질거야.


내 곁의 우동국물 한 모금과 함께라면 하루종일 얼어붙었던 자들의 마음을 싹 녹여낼 수 있으니 난 참 작지만 소중한 존재야. 김밥 속에 숨어있던 좁쌀이도 그러더라.


우린 모두- 작고 소중한 존재야.
버티길 참 잘했어. 그치?


떡국으로 우아하게 못 태어났다고 원망 따위 해본 적 없어.

가래떡은 가래떡대로, 쌀떡이는 쌀떡이대로, 밀떡이는 밀떡이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인생을 즐기는 지금.


난, 지금의 내가 참 좋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날에는 언제라도 날 찾아와.


찐득하게 감싸줄게.

화끈하게 울려줄게.

그리고 작지만 소중한 널, 늘 보고 싶어 할게.


우리, 힘내쟈! 떡볶이나 묵으러 가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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