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어플에 41도가 찍힌 이집트. 하지만 사막에, 건조한 기후 탓에 지표면의 복사열이 올라와 체감 온도는 50도를 웃도는 것이 예사였다. 일정 내내 '덥다. 뜨겁다. 목이 탄다. 얼음물 플리즈...'를 달고 지내며 건물들을 올려다보았을 때, 에어컨 실외기가 하나도 없거나, 거의 드물다는 것을 보곤 잠시 더위에 대한 투정을 멈추었다.
에티하드 항공사의 기내식. 파스타인데 향신료 향이 난다.
여행자로서의 나의 불평이 그들의 삶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일상에서 나는 과도한 나의 일상적 욕구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던 건 아닐까. 바람직한 여행자적 시점이라면, 그들의 삶에 온전하게 녹아들고, 온전하게 함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일상에 들어간다는 것.
여행은 철저히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에 관찰자적 시점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 우리는 일상을 잠시 떠나 다른 행복을 찾아, 혹은 이 행복을 더 파고들어 내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행복을 찾으려, 의식적으로 애를 쓴다.
그러다 문득, 자문해 본다.
여행이란 누군가의 일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 기서
[행]복할 것
이게 맞나?? 그게 맞아??
따릉 따릉~
빵을 가득 실은 이집트의 빵 배달부? 빵집 아저씨가 비켜달라고 자전거를 따릉 따릉 울린다.
낯선 여행지에 가면 일부러라도 꼭 재래시장을 찾는다. 재래시장이 가장 현지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이다. 관광객을 위한 소비지 말고, 현지인들이, 먹고 입고 생활하는 그 자체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재래시장을 찾는다.
이집트의 재래시장 역시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과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곳. 그 특성이 조금씩 달랐다. 관광객이 많이 가는 상점은 깔끔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반면, 현지인들의 시장은 우리의 5일장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상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나누기도 하고, 바쁘게 어디론가 오가며 그들의 삶이 흘러가는 공간, 그 자체였다.
부모님을 따라 시장 구경을 하는 아이들이 먼 타지에서 온 나를 보며 수줍게 웃어준다. 물건을 파는 아이들이 더운 열기 속에 가게를 지키면서도 한 손으로는 핸드폰 속 유튜브 영상에 빠져있는 모습이 우리네의 모습과 조금은 다르고, 조금은 같았다.
아이 셋과 함께 바닥에 앉아 구걸을 하던 한 여인. 작은 휴지를 팔던 아이 엄마는 모유수유를 하며 맨바닥 시장의 한편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어떤 판단도 하지 않으리.
그 어떤 편견도 개입시키지 않으리.
결코 우위 시점에서 그들을 바라보지 않으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삶 자체로 함께 공존하며 함께 공간을 채우리.
그게 다였다.
누군가의 일상에 들어간다는 건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여] 기서 나의 [행] 복을 찾기 위해 그들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 여름은 참 멋있었다.
피라미드 앞의 낙타 주인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무료로 사진 마음껏 찍으라며 얌전히 앉아 포즈를 취해준낙타도-
스핑크스와 입 맞추는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자연스럽게 호객행위로 다가온 이집트청년도-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위해 잠시나마 나일강변을 산책하는 길, 현지인들과 편안히 눈인사를 나눈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