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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Apr 23. 2022

엄마 오롯이 혼자 외출. 2년 만입니다만-

외출 전 #음쓰처리 완료 #식세기 돌림 #살금살금

주말 오전, 서울에서 업무 관련 일정이 잡혔다.

코로나 때문에 극도로 외출을 피하며 살아오느라

서울을(집에서 2시간 거리임) 혼자 나가본 건

코로나와 동시에 멈춰 있었다.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는 일 같아서

거리두기도 풀린 김에 큰맘 먹고 나가 보기로 했다.


엄마의 혼. 외출은 매우 까다롭다는 걸

미혼의 친구들은 알까 모르겠지만

잠깐을 나가더라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외출 사전, 사후 작업이 꽤 힘들다.


우선 어제. 금요일 밤부터 아이들과 신랑을

설득- 시켜야 했다.


내일 엄마가 일하러 나가야 해.

아침에 자다가 엄마가 없어도 놀라지 말고

오래 더 자-


아이는 내일 놀아달라고 하지만

아빠에게 맡기 기로하고

계속 더 내 할 말을 나열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을 건 여기에 있고,

뭐하고 뭐하고 뭐하고..




사실 내가 없어도 하루의 일상은 잘 움직여진다.

엄마가 없어도 잠깐 6시간쯤은

아이들과 아빠가 잘 놀고 잘 먹고 잘 뒹굴지만

나가는 사람의 마음음 그렇지 않다는 걸

엄마들은 알 것이다.


어젯밤, 식구들이 먹을 아침을 대충이라도 준비해두었고, 자고 일어나서는

살금살금 어제저녁에 먹었던 그릇들을 식세기로

옮겨 돌렸다. (금요일 밤이라) 어젠 느무 하기 싫었음)


밤에 처리 못한 음쓰레기들을 살금살금

가지고 나와 음쓰통에 버리는 것까지.


사전 작업 끝-


그렇게 피곤한 과정들을 마무리하며

아침 8시. 외투와 가방을 들고 외출에 성공했다.


오랜만의 외출이 설레기도 했으나

내 꼴을 보니 오 마이 갓!


오래 집과 직장만 오가다 보니 오늘의 착장이

너~무 사무실스럽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난 서울행 지하철을 탄 후였다.


예전에 이런 약속에 나갈 땐

네일아트, 블링블링한 액세서리 두세 개쯤-

신발도 옷도 모두 빤짝빤짝했는데.

오늘은 일단 손톱도 비어있고

(아침에 음쓰 버리기 위해서는 이 손톱이 제일 편함)

팔찌도 하고 올걸.

저녁 설거지 신경 쓰느라 머리도 못 말리고 나왔는데

팔찌는 무슨-


그리고 무엇보다!!

일할 때 신는 사무실 슬리퍼를 신고 나와버렸다.

야무지게 살색 발가락 가리개 양말까지 신었다.

와나-


이게 밖에서는 얼마나 튀는 발샷인지

그동안 일 할 때는 몰랐다.


그냥 발이 편하면 최고이지-

근데 발가락은 가리는 게 예의지-

싶은 딱 두 가지 생각만으로 이렇게 일을 하긴 하는데

오늘도 출근할 때 차럼 이걸 신고 나오게 될 줄이야.


아무도 내 발을 보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도 나처럼 신은 사람은 없어서

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어졌다.


갑자기 발도 시려온다.

발 막힌 거!! 그냥 양말에 스니커즈 신을걸-

현관에 있었는데!!!

유치원 하원하러 가는 슬리퍼로  서울에 가는 기분이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고

나는 괜찮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어쩐지 신경 쓰이는 건

이게 나의 2년 만의 외출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머리도 못 말리고 슬리퍼 질질 끌고 나와

음쓰를 통쾌하게 클리어했다는 즐거움으로만

발걸음이 가벼웠던 아줌마-

아이 보느라, 직장 생활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내 모습이 오늘은 조금 웃프다.


약속 시간이 있으니 신발을 사서 바꿔 신기도 애매하고.

에라이. 오늘은 망!!


계절이 바뀌는 점이지대에서

종종 옷의 두께를 가늠하지 못한 날은 많았지만

오늘처럼 서울 외출과 출근의 중간에서

신발을 잘못 선택해보긴 처음이다.


혹시 오늘 서울에서 슬리퍼에 발가락 양말을 신은 아줌마를 보게 된다면 웃지 말아 주세요.

눈 똥그랗게 신기하게 보지 마시고 ㅠㅠ

그걸 살필 만큼 여유 없이 육아하며 살아온 몇 년의 시간에 치여 살고 있구나-라며 넘겨주시길.


저도 알아요.

 피-


밤새 꽃이 져버린 창 밖의 푸른 잎들이

무심하게 여름의 코앞임을 알려주는데

왜 아직도 날은 쌀쌀한 거니.

슬리퍼 신은 내 발만 민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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