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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30. 2022

아직도 닮아가는 중입니다

가족환상곡 *6

부부는 살면서 서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아빠와 엄마는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달랐다. 아빠는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시스트다. 그에 반해 엄마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내가 누굴 닮아 이렇게 멋대가리가 없나 했더니 아마 엄마를 닮았나 보다. 아차, 방금 한 말은 취소다. 무심코 튀어 나온 실언이다. 하하. 


아빠는 결혼 이후 지금까지 각종 기념일을 성실하게 챙기고 있다. 하기야 올해 내 생일만 해도 12시 땡 하자마자 제일 먼저 축하해 준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 고맙긴 하다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그저 기분 탓이겠지. 생일날 아빠가 케이크를 사 온다길래 당연히 보급형 생일 케이크인 파리바게트 생크림 케이크를 사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도 잘 모르는 핫한 빵집에서 내 입맛과 취향에 딱 맞춘 조각 케이크 한 판을 사 온 것이다. 알록달록한 케이크의 자태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빠의 센스가 이 정도라니. 섬세한 마음 씀씀이에 몽글몽글한 감동이 피어올랐다. 조각조각 얼마나 고심하며 골랐을까. 달뜬 얼굴로 빵집을 나섰을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음식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먹는 행위에만 열광할 뿐. 그런 내가 이 각도 저 각도로 자세를 바꿔가며 어느새 케이크 사진을 찍고 있었다. 피사체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혼을 실어 찍은 사진도 실물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 도대체 무슨 맛일지 이제껏 먹어 온 케이크와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잠시 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잘랐다. 엄마는 조각 케이크를 한입 크기로 더 잘게 조각냈다. 촉촉한 초코 스펀지 사이사이에 상큼한 딸기와 진한 초콜릿 크림을 채워 넣은 쇼콜라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달콤 쌉싸래한 맛이 입안 가득 사르르 녹아 퍼졌다. 빵순이인 엄마는 벌써 케이크 두 조각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달콤한 유혹을 떨쳐 버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 그렇게 맛있어?”

“응, 보기 좋은 케이크가 맛도 좋다."

“언제는 뭐 이렇게 비싼 걸 샀냐고 눈에 쌍심지를 켜더니...”

“어머, 내가 언제 그랬어? 생사람 잡기는..."

엄마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입가를 닦았다. 달달한 걸 이 정도로 좋아했었나 싶을 만큼 케이크를 먹는 내내 엄마의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엄마의 혈당 검사 결과 내용이 떠올랐다. 공복 혈당 수치가 제법 높았는데 단 음식을 이렇게 막 먹어도 되는 건가. 한낱 달콤함에 취해 절제를 망각해 버렸다. 어쩔 수 없지 치팅 데이였다 치고 이번만 넘어가야겠다. 맛있는 것들은 왜 몸에 나쁠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요즘 들어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닌, 낯선 엄마를 가끔 발견한다. 원래 그랬던 걸까 아님 내가 몰랐던 걸까. 이제야 알게 되었다. 변한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나밖에 몰랐던 내가 뒤늦게 아빠 엄마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 본 것이다. 그래서 소년 같은 아빠도 만나고, 소녀 같은 엄마도 만나게 된 것이다. 진작 좀 만나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무지했고 무심했던 그 시절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행운의 부적처럼 늘 몸에 지닌 액세서리가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선물한 목걸이다. 이 목걸이를 걸고 있으면 플라세보 효과인지 몰라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사실 목걸이뿐 아니라 아빠가 엄마에게 쓴 러브레터도 어쩌다 보니 내가 보관 중이다. 아마도 엄마는 편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으리라. 아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삐칠 게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금방 풀리지 않을까 싶다. 아마 엄마만의 방법으로 아빠를 달래 주겠지. 물론 애교는 쏙 빼고 말이다. 


아빠와 엄마는 자주 그런다. 둘 중 누군가 서운해하거나 삐쳤거나 혹은 다투다가도 야구나 배구 생중계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경기 내용을 분석하며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마치 감독과 코치를 보는 듯했다. 이곳이 집인지 경기장인지 헷갈릴 만큼 집안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다. 스포츠로 하나 된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도 한마디 거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아빠는 야구와 배구의 광적인 팬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야구와 배구 경기는 빠짐없이 꼭 챙겨보았다. 초등학교 때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목을 길게 빼고 화면 속으로 빠져드는 건 여전하다. 아빠는 원래 그렇다지만 엄마는 어쩌다 야구와 배구에 푹 빠지게 된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올림픽 같은 큰 경기 외엔 스포츠에 별 관심도 없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아빠 옆에서 야구와 배구 경기를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선수들 이름은 물론이요, 규칙까지 세세하게 꿰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가도 아빠가 퇴근 후 집에 오면 야구나 배구 경기에 당연하게 채널을 고정했다. 채널을 양보한다는 건 닭다리를 양보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랑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엄마의 츤데레 매력에 나까지 빠져들었다. 이런 걸 보면 수십 년 함께 산 부부의 짬밥은 역시 무시할 게 못 된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 경외심마저 들 지경이다.


어쩌다 보니, 태어나보니 운 좋게도 부모를 잘 만났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돈 많은 부모를 만났다고 생각하겠지. 미안하지만 틀렸다. 나는 지독한 가난을 온몸으로 맞닥트린 부모 밑에서 자랐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우리 부모님은 희생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헌신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열심히, 성실히, 최선을 다해 키웠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무슨 일이든 안 풀리면 내 탓, 잘 풀리면 부모님 덕 플러스 나의 노력이라 생각한다. 매일같이 하는 기도가 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제발 내 덕 좀 보게 해 주세요. 가능하다면 평생 놀고 먹는 삶을 선물하게 해 주세요."

부디 몽상적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기를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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