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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Dec 01. 2022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웰니스컬리지 3기 - 웰니스전문가 과정을 마치며

    나는 에너지가 많이 고갈되어있었다. 희한한 일이다. 나는 지금 딱히 하고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던 때와 비교해보면 잠도 훨씬 많이 자고, 스트레스도 훨씬 덜 받고,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 속에서 지내고 있으니 힐링에 최적화된 환경 아닌가? 인과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내가 이상했다. 배가 고프다기에 밥을 주었는데, 내 안의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에너지를 어딘가에 쏟은 기억이 없는데, 왜 자꾸 내 안의 에너지는 동이 나는 건지, 에너지를 채워보려 노력했다.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좋아하는 책도 읽었다. 하지만 잠깐 뿐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면 에너지는 금세 바닥을 보이고, 내 속의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친구들은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이는데, 나만 홀로 줄이 끊어진 부표처럼 바다 위를 떠다니는 듯했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에너지는 자꾸만 동이 났다. 나는 내가 어쩌면 밑 빠진 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웰니스 컬리지

    동해에서 요가를 하다가 친해진 요가 선생님이 웰니스 컬리지를 소개해주셨다. 참가자 모집 신청일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운 좋게 참여하게 되었다. 요가와 명상, 싱잉볼 등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주말마다, 하루에 9시간씩 4주간 온라인 줌으로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주위에서는 힘들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에겐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무료한 일상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리고 국비지원으로 좋은 수업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이것저것 많이도 보내주셨다. 요가매트부터 수업에서 사용되는 부재료들이 커다란 박스에 담겨 선물처럼 도착했다. 차 명상에 필요한 오설록 차 세트와 텀블러, 도테라 아로마 오일, 먹기명상에 사용되는 견과류, 티베트 싱잉볼과 모래시계, 색채 명상에 쓰이는 48색 색연필과 도안 등이었다.

    온라인 수업의 한계는 있었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지식을 얻고,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 물으면 서슴없이 요가와 명상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이토록 다양한 명상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고, 4주 동안 시야가 많이 확장되었다. 우물 밖의 세상을 처음 접한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4주간 배웠던 것들 중에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먹기명상과 걷기 명상이었다. 늘 정돈된 환경에서만 명상을 하려 했던 나의 틀이 와장창 깨지는 경험이었다.


명상의 생활화 - 먹기명상, 걷기명상

    불안도가 높아지거나,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되면 호흡명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순간에는 명상을 잘 찾지 않았다. 명상을 매일 나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먹는 영양제가 아니라, 아플 때 찾는 진통제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소화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소화제를 달고 사는데, 먹기 명상을 하며 식사한 날에는 체기가 들지 않았다. 보통 혼자 식사할 때는 무언가를 보면서 먹어서 무의식적으로 씹어 삼켰는데, 먹기명상을 할 때에는 입 안의 감각이 살아나서 더 천천히 먹게되었다. 식사를 할 때, 어떤 음식이든 첫 입을 먹기 전에 향을 맡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재료 본연의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입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후각으로 맛을 예상하기 때문에 먹는 기대감이 커져서 좋다.


    걷기 명상은 고질병이라고 생각했던 팔자걸음을 고쳐주었다. 내 발이 땅에 닿는 감각에 집중했을 뿐인데, 틀어진 몸이 제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그 짧은 무료함도 견디질 못해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걷기명상을 하는 동안은 무료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이렇게 몇 가지 명상법을 몸에 익혀 습관으로 만든다면, 따로 시간 내서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명상을 생활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야 할 방향

    색채 명상은 나의 편견을 깨뜨리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필요한 만큼이나 나의 가족들, 친구들에게도 명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번번이 회유하고, 설득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상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고 했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하고 싶은 욕구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어떤 좋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무의미하다. 앞으로의 삶에서 지속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명상과 요가를 경험시켜주고자 가장 애쓰던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색채 명상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옆으로 다가와 한참 간을 지켜보셨다. 나는 흥분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툭 던지듯 "해볼래?" 하고 말했다. 엄마는 주저하는 듯하더니 색연필을 들고 묵묵히 색칠을 하기 시작했다. 다 칠하고 나서 자기 것이 안 예쁘다고, 재능이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엄마는 그렇게 한 발짝 내 곁으로 그리고 엄마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와 함께 한 공간에서 몰입했던 그날의 경험은,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했다. 엄마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는 방법에 한 길만 있지 않다는 것, 곁에서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명상의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더 쉽게, 명상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졌다. 사실 어찌 보면 '명상'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분위기가 진지하고, 어려울 뿐, 우리들의 일상 속에는 이미 명상의 도구가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색칠명상

3박 4일의 여정

    4주간의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수업은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3박 4일간 오프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60명이나 모이는 대규모 워크숍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설렘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 '될 대로 돼라, 안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사는 나답지 않게 용평리조트를 찾아가는 길을 찾고, 또 찾았다. 혹시라도 어긋날까 노심초사하며 이곳저곳에 전화하고, 확인하며 변수의 가능성을 줄였다.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오프라인 수업을 기대했나 보다. 숙소는 1인당 2인실 하나가 배정되었다. 혼자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행복이었다.

용평리조트 객실

    첫째 날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 스카이워크를 걸었다. 공간이 주는 낯섦은 반가웠고, 사람이 주는 어색함은 불편했다. 발왕산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호흡 채집을 했는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멋진 풍경을 마주했을 때 그 풍경을 온전히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을 놓칠까 봐 불안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사진으로 아름다운 순간은 포착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존재했을까? 아름다운 풍경만 있고, 나는 사라진 순간이었다. 앞으로 남은 여정 동안은 온전히 매 순간 존재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날에는 발왕산 천년주목숲길에서 걷기 명상을 했다. 이 시간이 3박 4일의 여정 중 두 번째로 좋았던 시간이었다. 우리들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꽤나 애를 썼다. 어색함을 없애려 대화를 걸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느라 또 현재에 온전히 머무를 수 없었다. 우리들의 상태를 알고 계셨던 건지 걷기 명상은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을 작은 엽서를 나눠주셨다. 앞서가는 사람들 중에 내 마음에 특별히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몇 사람이 눈에 띄어, 왜 그들에게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지도 고민해보고, 한 자리에서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에게 경외심을 느끼기도 했다.


    다양한 모양새로 가지를 뻗은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한참 간 생각에 잠겼다. 왜 우리들은 이리저리 뻗은 나뭇가지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멋있어하면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진로를 바꾸는 스스로는 한심하게 바라볼까? 어느 길을 가고, 얼마나 방황하든, 세상에 발붙이고 서있으면 그 자체로 멋진 한 그루의 인생인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앞선 고민에 대한 답도 나왔다. 내가 누군가를 특별히 불편해하는 이유는 나와 다르거나, 나의 싫은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두 가지 모두 수용을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나와 다름을 수용하지 못해서, 나의 단점을 수용하지 못해서. 내 모든 생각의 끝에는 수용이 달려있었다.


우리 엄빠를 부탁해

    둘째 날에는 6명씩 팀이 되어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박 4일간의 여정 중에 가장 즐거웠고, 가장 많은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었다. 프로젝트는 개개인이 작성한 고객 페르소나를 랜덤으로 뽑아 웰니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 세대인 5-60대 부부 고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팀원들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하는 고객 대상이었기에 더 열심히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우리 부모님이 행복하기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여섯 명의 팀원들 모두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내 생에 이토록 아이디어가 쉴 새 없이 많이 나오고, 서로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했던 조모임은 처음이었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너무 신이 나고 흥분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감정까지는 헤아리지 못하고 내 생각만 잔뜩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팀원들은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나의 강한 주장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고, '저 사람은 자기주장에 목이 말랐구나'라고 느끼고 수용해주었을테다. 오랜만에 불이 붙어 사방으로 스파크를 만들었는데, 내 불꽃에 맞불을 놓지 않고 수용해준 팀원들에게 한없이 고맙고 부끄럽다.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들어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배려와 관용에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여섯 명이 모여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의견을 공유하던  순간, 내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몸속의 피가 뜨겁게 흐르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밑 빠진 독에서 물이 세지 않게 막으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에 목이 말랐구나',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를 믿고 응원하며 함께 나아갈 친구와 동료가 필요하구나'를 깨달았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이 어렴풋 보이기 시작했다.


    팀 프로젝트는 4일 차 마지막 날에 발표를 하고 참가자들의 투표로 1,2,3등을 선정했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자꾸만 욕심이 났다. 욕심이 생기니 부족함을 찾게 되었고, 그 뒤엔 불안감이 따랐다. 하지만 거기서 그만이었다. 발표를 맡은 팀장님이 그냥 하자고, 완벽한 건 없다고, 이만하면 됐다고 다독여주었기 때문이다. 믿음직하고 안심되는 리더였다. 그래서 나도 생각했다. 우리가 즐거웠으니 그걸로 그만이라고,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팀 프로젝트하는 동안 살아있음을 느꼈으니 만족한다고. 그러니 내려놓자고.


    내려놓으니 스토리가 드라마틱하게 흘러갔다. 우리 팀이 1등을 한 것이다. 여러 배움을 얻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결과가 증명해주었다. 그 길이 맞다고, 그 깨달음이 맞다고 말이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걱정하기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들은 많이 가까워졌고 애틋해졌다.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위로했다. 개개인이 아닌 집단이 모이니 에너지가 엄청났다. 알을 깨고 나오고 싶어 버둥거리는 움직임과 아우성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는 한없이 버겁기만 했던 일이, 함께라고 생각하니 거뜬히 해치울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를 가두는 사회적인 틀, 타인의 시선, 부정적인 신념들을 깨고 나오는 일 말이다. 나의 인생은 웰니스 컬리지에 참여하기 전과 후로 나뉠 듯하다. 내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웰니스컬리지 #웰니스컬리지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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