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과 돈의 자유, 그럼 나는 행복해질까?
집, 회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가는 장소를 꼽는다면
단연 교보문고가 아닐까 싶다.
평일에도 종종 점심을 거르고
가까운 교보문고를 가서 배회하다 온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삼삼 오오
서점 구경 온 직장인들도 보이고,
돋보기를 쓰고 독서에 열중하고 계신
어르신들도 보이고,
엄마 손을 잡고 공룡이 잔뜩 그려진 책을
집어 들고 가는 아이들도 눈에 띈다.
점심을 굶은 탓에 배는 고프지만
낯선 사람들과
책이라는 공통점을 향유하는 그곳에서
마음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서점을 가면
자주 들리는 코너가 정해져 있는 편이다.
에세이, 인문, 그리고 영어,
최근에는 경제/경영 코너와
자기 계발 코너를 기웃거린다.
서점에 얌전히 놓인 수많은 책들 중
요즘은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
회사 없이도 자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책들에게 손이 간다.
회사원 월급은 거기서 거기,
그렇다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투자를 통해 차익을 거두고
그 차익으로
노년은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는 공식.
구미가 당긴다.
로또가 되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로또가 되지 않더라도
책에서 알려주는 대로
자산을 불리면 누리게 될
시간과 돈의 자유는
생각만으로도 달콤하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일대일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가볍게 점심을 먹은 뒤
수업을 들으러 대학교로 간다.
전공은
(배워보고 싶었지만 돈이 되지 않으니까-하며 관심을 접었던)
철학이나 사학, 국문학이 되겠지?
수업을 마치면 교보문고를 가서 신간을 구경하고,
한 번씩 피아노 레슨을 받고,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마트 들러 양질의 식재료를 잔뜩 사 와서
요리해놓고
남편과 저녁 만찬을 즐기는 삶.
그런 삶을 살면 지금의 우울한 내 표정도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월~금 사이의 지겨운 일상과
그 속에서 무뎌져 가는 나의 감정들도
하얗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 독하게 돈 벌고 열심히 저축하고
돈 많이 벌어서 빨리 부자가 돼야지!라고 되뇌며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난 여전히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바라는데,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분들의 모습이
한 번씩 떠오른다.
미슐랭 가이드에 올라온
라멘 맛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폐지가 잔뜩 들어간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셨던 할머니.
몇 년 전, 회식을 마치고 저녁 아홉 시가 넘어 집으로 총총 걸어가는데
영하 5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얇은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코끝이 빨개진 상태로 꽃을 팔고 계셨던 할머니.
지하철 역에서 소담하게 나물과 떡을 내놓고 장사하고 계셨던 할머니.
난 착하지도 않고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나만 생각하게 되고
별 것 아닌 일에 공격적이 되고
뾰족해져만 가는데,
왜 종종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까.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과 돈의 자유를 누리게 되면
정말 나는 행복할까?
어쩌면 그때도 똑같이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아직은 '이러려고 태어났나'싶게
인생이 무미건조하고
하늘이 주신 소명도 사명도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아 이게 내 삶의 이유였구나!'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날이 온다면
할머니들이 왜 내 마음을
두드리고 지나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