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며느리 일기요?
네 갑자기 어느 진짜 개빡치는 명절이 생각나서 적게 되었습니다....
나는 큰 며느리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개빡치는 명절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당시 시댁에 생계가 달려있는 상황이었다.
시아버지의 사업(?)을 남편이 물려받기로 하고 살던 곳을 떠나
시댁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시아버님은
갖은 감언이설을 했고 그중 지켜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제삼자인 내 친구가 조심스럽게... 솔트야 그 정도면 취업사기 아니야? 했을 때
나는 1초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맞아 취업사기...
언젠가부터 징조는 있었다. 그때도 어느 명절이었고 시아버지는 나에게
- 큰집에선 며느리한테 이년 저년 하던데 내가 너한테 그러면 어떻게 할래?
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던졌다. 나는 바로 직감했다. 지금 이 개소리 못 막으면 큰일 난다.
- 우리 엄마아빠한테 얘기해야죠.
나의 대답에 시아버지는 말까지 더듬으며
- 니... 너네 엄마아빠한텐 왜... 왜 얘기하냐!!!
하고 소리쳤고 나는 다신 이년 저년의 ㄴ도 못 꺼낼 대답을 했다.
- 그래야 우리 엄마아빠도 이서방이라고 할지 이 새끼야라고 할지 정하시죠
내 대답에 시댁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라고 싶었다.
남의 집 딸한테 이년 저년은 하고 싶고 우리 집 아들이 이 새끼야 소리 듣는 건 싫으신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해의 추석이었다. 그리고 그 해 추석은 내 생일과 겹쳤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시아버지는 작은 며느리한테 먼저 전화하여 내려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하지만 큰며느리한테는 너는 무조건 꼭 와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시할머니까지 전화해서 너는 꼭 와야 한다 무조건 와야 한다 안 올 생각 마라 하셨다.
나의 싫어요 안 돼요는 어림도 없는 소리...
그렇게 명절을 보내러 시할머니 집으로 갔다. 명절 전날이면 으레 며느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기름냄새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절여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갓 튀긴 새우튀김은 맛있지...
그리고 다음 날.. 추석 당일이자 내 생일.
아침부터 차례준비로 일찍 일어나서 분주히 준비하여 차례를 지내고 밥상을 차리고 밥 먹고
그걸 또 치우고 과일상을 준비해서 과일 차려드리고 커피도 타드리고 또 치우고.....
손님 오면 또 차리고....
시아버지랑 시할머니는 큰며느리가 올해는 친정을 안 간다는 말에 연휴 내내 잡고 있을 생각을 하셨다.
(시어머니는 안 계신다. 근데... 어머님도 살아생전 명절에 친정을 못 가셨다 했으니... 네 알만하죠?)
그래서 시할머니집 뒤편의 돌을 깨는 공사를 뜬금없이 시작했는데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아무 피해도 안주는
돌을 왜 깨려고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공사에 남편이 동원되어 돌을 깨야 했다.
그리고 그 돌을 다 깼을 때는 점심 직전의 시간이었고 시아버지는 술판을 본격적으로 펼치려는 찰나..
큰아들의 집에 가겠다 선언에 어이가 없어지셨다.
큰아들은 오늘 솔트 생일인데 생일날 친정도 못 가는데 시댁에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요!라고 주장했고
그 말에 시아버지는 나한테 쫓아오셨다.
- 추석 했으면 됐지 니 생일을 꼭 해야겠냐!!!
시아버지의 그 말에 그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지 싶었다. 추석과 내 생일의 상관관계는?
- 어쩌다 보니 겹쳤네요
- 그러니까 네가 잘못 태어난 거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내가 지금 여태까지 살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최악인데?
뭐라 입도 떼기 전 시아버지는 봉투에 돈을 담아왔고 그걸로 내 뺨을 툭 치고 주셨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돈봉투로 뺨을 맞는(?)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내 눈은 이미 돌았다.
이건 선을 넘었다. 앉아있던 나는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나도 시아버지도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입을 떼는 순간 난리가 나겠지만 그딴 건 두렵지 않다.
그때 마침 남편이 등장했고 내 눈이 돌아있고 얼굴이 시뻘게진 것을 보아 뭔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채고
그대로 나와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서 나왔다.
차에 탐과 동시에 선언했다. 나는 다시는 아버님 안 봐....
아버님과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너 그렇게 대하더냐 나는 무슨 죄로 너네 집에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고 외치는 나의 말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남편은 아버님과 절연을 선언했다.
이렇게 절연을 해서 나는 시댁이 없어지게 되었고 더 이상 그렇게 화나는 명절은 없다.
글쎄... 아버님은 후회를 할까? 아들네 생계를 무기로 틀어쥐고 살고 싶으셨으나 큰아들도 큰며느리도
그렇게 살기를 거부했다. 해마다 명절을 앞두고 시댁의 다른 사람들이 남편에게 너네만 참으면 되는데 하며
연락이 오지만 한 사람만 참아서 유지되는 평화라면 그 참는 사람의 평화는 누가 지켜주죠?
한 사람만 지옥에 있으면 남들이 편해지는 게.... 옳은 걸까?
누군가는 나에게 그냥 조금만 참으면 남은 평생이 유복할 건데..라고 하지만 아뇨.
그냥 제 편안은 제가 돈 벌어서 제 돈으로 꾸려나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