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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Dec 01. 2023

우리 집 강아지는 몹쓸 강아지

개아범의 비애

코로나19 이후 주변에 강아지 키우는 가정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밀크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 나가면 여기저기 우리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개들끼리 매너 있게 인사라도 시키고 싶은데 저만치에서 멍멍이 냄새만 나도 벌써 으르렁대며 시동을 거는 탓에 오히려 강아지들을 피해서 멀리 돌아가야만 하는 신세다.




밀크는 2020년 4월 13일생이고 견종은 몰티즈, 중성화된 수컷이며 시아 초등학교 2학년 때 입양을 했다.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호적에는 올릴 수 없지만 우리 가족은 확실하니 관계는 양아들 정도로 해두겠다. 원래 나와 신랑은 예전에도 강아지를 키운 전적들이 있다. 신랑은 믹스견부터 시작해 닥스훈트까지 3~4마리 정도를 항상 키워 왔었다. 나 또한 지금의 신랑이 남자친구였을 때 생일선물로 요크셔테리어를 선물해 주었는데 어떻게 강아지를 다뤄야 할지 일자무식일 '다라(김장 담글 때 쓰는 빨갛고 넓은 그 대야-아는 사람은 옛날사람)'에 대충 넣어놨다가 감기가 된통 걸리는 바람에 며칠 시름시름 앓다 무지개다리를 보낸 적이 있다. 가냘픈 몸매가 뭔가 연약해 보여 '강냉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후에 저세상으로 떠나고 난 후 엄마는 강냉이 죽도 아니고 개 이름을 뭐 그렇게 없어 보이게 지었냐며 속상한 마음에 뭐라 하셨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더욱 가슴이 쓰렸다. 강냉이를 떠나보내고 그 당시 유행이었던 온라인 분향소에 들어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라는 편지를 적으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는데 해준 게 하나도 없이 아프게만 만든 것 같아 미안하고 속상하고 그리운 마음에 정말 꺼이거이 울며 키보드를 한 자 한 자 누르던 그때가 떠오르 시 심장 한쪽이 저릿하다.


강냉이를 잃고 3년쯤 흘렀을까, 대학교 4학년 때 근로장학생으로 뽑혀서 그때 받은 장학금을 몽땅 털어 새로운 강아지를 구입했다. 눈이 초롱초롱 유난히 반짝이는 두 번째 요크셔테리어의 이름은 '초롱이'었다.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왕자님의 위를 한 번도 떨어뜨린 적 없이 평온한 15년을 사시다 2016년 겨울에 강냉이에 이어 두 번째 무지개다리를 건너셨다.


우리 가족이 된 2020년 7월 3일


이후 아들과 엄마 사이로 만난 밀크가 세 번째 반려견이다. 초롱이는 외출을 많이 해본 적이 없어 사회성이 무척 결여돼 있었기에 밀크는 아기 때부터 강아지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해 줘서 성격 원만한 멍멍이로 만들자는 작은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산책이 가능한 4개월부터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성견이 되고 1살이 가까워 오니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침 가까운 수선집에 뽀삐라는 어여쁜 누님 몰티즈가 있어서 종종 놀러 가 어울려 놀곤 했는데 어느 날 그 누나의 밥그릇을 탐내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고구마를 작게 잘라 같이 나눠 먹으라며 한 그릇에 넣어 주셨는데 갑자기 그 앞에서 밥그릇을 지키더니 심지어 다가오는 뽀삐 누님에게 송곳니를 내보이며 으르렁 경보 울림소리를 냈다. 겁먹은 3살 연상 누나는 기가 죽어 자기 밥그릇을 자기 밥그릇이라 부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게 웬 민폐인가. 아주머니가 얼마나 애지중지 뽀삐를 키우시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민망함에 사과를 하고 자리를 나왔다. 그 이후로는 수선집에 밀크를 데리고 가기 죄송했고 밀크의 사회성 프로젝트는 망함의 기운이 짙어지고 있었다.


한 번은 강아지카페에 데리고 갔는데 다른 친구들은 처음 봐도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 인사를 하고 금세 즐겁게 놀았다. 밀크도 어디 한번 보자며 바닥에 내려놨는데 웬걸, 거들떠도 안 보고 나에게 안아달라고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을 두려움 속에 떨던 밀크는 친구 하나를 못 사귀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의 연속이었다.


가족에게는 착하냐 묻는다면 답은 글쎄올시다. 우리 집은 철저한 서열제다. 그냥 엄마는 부동의 1등, 산책/밥 주기/목욕 전문 아빠는 3등(꼴등), 개구쟁이 누나는 아빠덕에 2등이다. 누나는 엄마가 예뻐하니 눈치를 보느라 마음엔 썩 안들지만 2등인 것 같고 궂은일만 도맡아 하는 아빠는 고생만 하고 꼴등이다. 이 닦기 싫다고 아빠 손에 스크래치를 낼 때가 있는데 자긴 밀크가 싫어하는 일만 해서 미워하는 거라며 신랑은 종종 투덜대곤 한다. 그래서인가 우리가 안 볼 때 간식을 수시로 투척하며 인기몰이에 나서지만 간식만 받아먹으면 바로 끝나버리는 둘은 비즈니스 관계, 딱 거기까지로 보인다. 어느 날 신랑이 또 한마디 던진다.

"야아~ 무슨 개가 이렇게 오라고 해도 안 오고 손을 달라해도 안 주고 앉으래도 안 앉냐? 내가 다양한 개들을 키워봤지만 이렇게 말 안 듣는 개는 첨 본다."

"야아~ 무슨 개가 주인을 등지고 앉아있냐? 진짜 예쁘게 생기지 않았으면 너는 당장 쫓겨났다. 도대체 우리한테 해주는 게 뭐냐?"

그런데 어쩜 좋을까 신랑, 는 오라면 오고 손 달라면 주고 일어나서 자기 계속 쓰다듬어 달라고 난리난리인데. 미안해. 우리 집 강아지는 나만 사랑하는 몹쓸 강아지인가 봐.


그냥 볼 땐 진짜 귀엽고 사랑스럽다.


많이 춥다. 눈도 오고 더더 추워질 일만 남은 요즘이다. 마음이 헛헛해 신랑이 자꾸 구시렁대 건가. 내일 뜨끈하게 콩나물국 한 끓여 고춧가루 팍팍 풀고 아삭한 김치, 깍두기 먹이면서 밀크에게 받은 상처 좀 개운하게 치료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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