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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Sep 05. 2024

아이와 반대로 하는 엄마

우리 집 닭요리를 참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튀긴 닭을 좋아해 한 달에 서너 번 배달을 시켜 먹는다. 주로 처갓집 양념치킨에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하는데 이름대로 이 가게는 양념을 참 맛있게 만든다. 양념 중에서도 슈프림양념치킨이 젤 입맛에 맞던데, 그 묘하게 찐득이면서도 바삭거리는 식감이 기가 막힌다. 글로 설명하려니 꽤나 답답하지만 아무튼 후라이드만 고집하던 딸아이가 양념닭도 맛있다고 최초로 인정한 거면 양념이 진짜 맛있다고 보면 된다. 일단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적당한 달큼함도 놓치지 않았다는 얘기. 생각해 보니 내게는 경쟁자가 생긴 셈이다. 원래 딸아이는 정통 후라이드파, 신랑은 모녀를 살펴보면서 허전한 닭 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눈치파, 나는 정통 양념 파였는데 이제 양념파가 둘이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내가 더 부지런히 양념닭을 먹어버린다? 아니죠, 양념대신 후라이드를 더 먹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거죠. 왜냐고요? 제가 덜 먹어야 딸이 양념닭을 하나라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딸은 엄마의 그 마음을 아느냐고요? 설마요. 책 보면서 잡수시느라 주위를 살펴볼 새도 없이 자기 입에 넣기 바쁘죠. 그냥 제가 좋아서 이러는 거예요. 딸 탓도 아니고 그냥 엄마가 되니까 자동으로 이런 마음이 생기네요. 저도 소싯적 제 입에 넣기 바빴던 여자였답니다. 암만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신비한 일을 가능케 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이죠.


오래간만에 요리 신이 강림해 아이가 좋아하는 야채 소시지볶음을 만들었다. 어릴 땐 채소를 더 잘 먹더니 커가면서 소시지를 먹는다. 그렇담 소시지보다 안 팔리는 야채는 나의 몫. 평소 야채를 잘 안 먹는데 이 기회에 팍팍 먹지, 뭐. LDL수치도 높은데 아주 잘됐어. 오, 갑자기 양파랑 파프리카로 아이의 젓가락이 옮겨진다. 그러면 나도 소시지 1개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득템이다. 


딸과 나 둘 다 머리가 길고, 머리카락들이 얼굴 주변에서 덜렁거리는 게 싫어서 대부분 묶는 편이다. 그래서 검정 고무줄을 매일 쓰는데  만큼 금세 잃어버리다 보니 화장실 벽에 훅을 달아 거기에 10개 남짓 걸어둔다. 그러면 공용공간이니 서로 고무줄 어디 갔냐고 찾을 필요도 없고 씻을 때 걸어두고 필요할 때 다시 쓰면 되니 꽤나 편리하다. 쿠팡에서 두 종류의 검정 고무줄을 100개 정도 다량 주문했는사용하다 보니 여러 번 써도 짱짱함을 유지하는 A가 있는가 하면 몇 번 쓰면 탄성을 잃고 훅 늘어지는 B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미 A고무줄이 B고무줄보다 좋다는 걸 깨달은 뒤에는 B고무줄이 쓰기 싫어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아이도 B가 있지만 어느 날부터 A만 쓴다. 나도 물론 쓰기 싫다. 그럼 B는 버리나? 아니다. 싸구려라도 다 돈 주고 산 건데 내가 써야지. 자꾸 고무줄이 흘러내리면 더 자주 묶으면 되지, 뭐. 사소한 에서부터 부지런해지는 게 중요하다.


난 나밖에 모르고 살았다. 예쁜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은 다 내 차지였다. 동생은 아들이었지만 부모님은 우리를 남녀차별 없이 키우셨다. 오히려 장녀고 몸이 약한 나를 더 우대해 주셨다. 그래서 대부분 나에게 우선권이 있었고 가족 중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결혼하고는 성품이 순한 남편을 만나 최대한 나에게 맞추고 도와주려 하는 모습에 이 또한 내 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대우받는 것들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깊은 착각 속에 빠져 참 오래도 지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가족들의 배려와 사랑이 날 감싸주었기 때문이란 걸 자식을 낳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데 내가 뭐라고 주변에서 이해하고 내 말에 수긍해 주었겠는가. 조건 없이 날 사랑하니까 한없이 봐준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딸과 반대로 행동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딸이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니까 하나라도 더 아이가 좋아하는 걸 먹이더 나은 걸 사용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니 나도 기분 좋게 그리 행동할 수 있는 거였다.


이기적인 내가 자식을 낳은 이유만으로 먹고 싶고 고 싶은 것들을 꾹 참으며 또 그런 선택을 함에 있어 어떤 억울함도 없는 순도 100프로의 이런 행동들은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이제는 남들을 대할 때에도 똑같이 가능하다는 것, 그만큼 난 진짜 어른으로  한 번 성장한 것이라고 본다. 도대체  나란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이생에선 힘든 건 아닐 싶을 정도로 난 아직도 갈길이 한참 , 미숙한 엄마이자 여자인 것 같다. 하지만 엉터리 인간이더라도 깨달음을 얻고 배움이 있다면 상엉터리는 아니지 않을까? 열심히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매일매일 찐어른으로 거듭나길 조용히 기대해 본다.


아이와 반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내가 자식을 낳기 전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때의 나보단 지금의 내가 100배는 더 행복하기에 오늘을 웃을 수 있고, 내일도 인내할 수 있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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