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라Lee Aug 29. 2024

근데... 안 한 거 아냐?

의심의 고리


아이의 말을 최대한 믿어주자 하지만 의심 어린 눈초리와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때가 있다. 다정한 엄마, 이해해 주는 엄마, 아량 넓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선한 탈 이면에 감추어검은 마음, 그것이 알고 싶다.


영어숙제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아이. 며칠 후 인터넷 사용할 일이 있어 노트북을 켜니 유튜브와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캐릭터가 나온 화면이 뜬다. '영어숙제한다고 하더니 이런 거 띄워놓고 놀고 있던 거 아니야?' 아이가 하교한 뒤 슬며시 물어본다. 혹시 영어숙제 하면서 이것저것 다른 사이트도 보았던 거냐고. 아이는 며칠 전에 학교 발표자료 준비하느라 링크 거는 것 때문에 유튜브를 열었던 거였다고 한다(진짜로 아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이긴 했다). 그리고 캐릭터 도 퀴즈를 내려고 참고자료 살피느라 켠 거란다. 놀고 싶으면 영어숙제를 아예 다 끝내고 사이트를 열지 왜 숙제한다고 하고 노냐고 한다.


아이는 결백한 표정으로 소상히 상황을 짚어가며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서 아닌  것 같은데 너 거짓말 아니냐고, 의심이 깔린 말을 차마 내뱉을 순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주는 게 속 편하지 계속 따지고 이기려 들어서 무엇 하리. 설령 진짜 딴짓을 했더라도 자길 믿어주는 엄마의 마음을 믿고 그다음부터는 정말 숙제에 몰입하겠지. 내가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막고 참견하면 아이는 더 멀리 도망치려 할 텐데 적당히 모른 척 넘어가주고 스스로 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차라리 서로에게 편한 일 아닐까. 


아이의 진심을 믿어주기로 했으면 쭈욱 그렇게 가야 하는데 또 다른 나만의 의심스러운 증거가 나타나면 다시 조심스레 아이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학원숙제는 다 했는지 구두로만 체크하고 내가 직접 살펴보고 확인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유독 수학숙제를 하기 싫어하면서 비비 꼬는 모습을 포착했다. 학원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다 되니 허겁지겁 문제집을 가방에 구겨 넣길래 숙제는 다 한 거냐고 물어보자 딸아이는 다했다고 대답한다. 꺼림칙하지만, 설사 다 못 끝냈다 해도 차라리 학원 선생님께 혼날망정 '그래 알았다'하면 되는걸 진짜 한 거 맞냐, 안 한 것 같은데, 라며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말을 끝내하고 말았다. 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꽤나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진짜 했다고" 한숨을 뱉으며 가방을 둘러매고는 이후 아무 말이 없었다. 순간아차 싶었다. 안 한 것 같으면 잠깐 문제집 좀 살펴본다며 조용히 내 눈으로 체크하고 끝내면 될 것을 안 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는 왜 해가지고 학원에서 3시간  동안 머리 싸매고 아플 아이의 기분을 망쳐놓는지. 믿어주려면 확실히 일관되게 믿어주든가, 의심스러우면 옆에 아이를 끼고 철저히 챙기든가. 꼼꼼히 챙기기엔 귀찮고 버거우면서 아이 보고 알아서 하라기엔 찝찝한 거지. 중간은 없나, 중간은.


평소에 아이에게 엄마는 시아를 항상 믿고 우리 딸 얼마나 착하고 모범생인지 참 기특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좋아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입을 씰룩거리며 헤헤 웃는다. 귀여운 저 녀석 웃는 모습이 이뻐서라도 내가 더 이해해 주리라 너른 마음으로 품어주리라 다짐하며 사랑 어린 눈빛으로 아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놓고 얼마 못 가 또 의심의 조각을 주워서는 쿨하게 버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질문의 화살을 돌린다. 정확히 말하면 호기심 어린 질문이지만 아이는 그냥 자길 의심한다고 생각하겠지. 처음에는 엄마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구나 싶었더라도 횟수가 늘어가면 갈수록 본인 행동을 자꾸 안 좋게 본다고 생각할까 봐 이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렇다면 엄마로서 어떤 모습으로 아이를 대해야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이 산을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일단 오해할 언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자기 할 일을 무리 없이 잘해나가고 있다면 이러쿵저러쿵 추가질문은 안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의 일이 진정으로 궁금하다면 직접적으로 물어보되 애매하게 돌려서 캐내려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도 다 안다. 엄마가 알아내려고 묻는 건지 진짜로 몰라 궁금해서 묻는 건지. 곡선 말고 직선의 솔직한 태도를 보이기로 했다. 완곡한 말투는 쓸 수는 있지만 뭘 얻어내려고 한참 돌아가는 방법은  쓰지 않기로 말이다.


아이는 날 믿어주고 사랑하다 못해 내가 하는 작은 행동까지도 좋게 봐주어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 하는데, 나는 왜 자꾸 못 미더운 마음으로 딸을 시험하려 했을까. 그 마음 순수하게 받아 나도 고마운 마음으로 돌려주고 싶다. 의심렌즈 착한 척하는 엄마 말고 믿음렌즈를 장착한 정직한 엄마로 거듭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