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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Aug 22. 2024

강아지도 사람 말을 이해하려 하잖아~

귀를 기울이면...

우리 가족 중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 흰둥이. 식탁에 앉아 필사를 하면 식탁의자 아래에 있는 방석에 앉아 내가 일어설 때까지 망부석인 강아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또는 전신을 쭈욱 편 채로 곤히 자며 지루한 시간들을 때우는 듯 보인다. 설거지를 위해 일어서면 방석 위에서 몸만 일으키고 앉아 있는다. 아직 내가 부엌 area를 벗어나진 않았기에 이동은 없다. 설거지를 마친 후엔 청소기를 미는데 이땐 이동이 있다. 부엌을 밀면 거실에, 거실을 밀면 부엌으로 도망가기 위해서다. 왜냐? 청소기가 무서우니까. 청소기가 시끄럽긴 해도 어떤 장치인지 모르니 딱히 관심이 없었다가 장난꾸러기 엄마 탓에 크게 데고부터는 자길 공격할까 겁나서 도망 다니는 거다. 어떤 짓을 벌였느냐? 청소기를  후욱하고 바닥에서  미끄러트리며 강아지를 항해 돌진했던 . 청소기의 흡입력에 놀란 건지 이 도구가 자길 공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거에 식겁한 건지 아무튼 그날 이후로는 청소기를 거치대에서 뽑아 드는 순간, 피신할 곳을 찾느라 흰 개는 매우 분주하다. 왜 착하고 순한 상대를 보면 놀리고 싶은지 짓궂은 성격은 나이 40줄이 넘어절대 고쳐지지 않는 불치병이다. 내게 당할 때 당황하는 그 모습이 아주 귀여워죽겠다. 주위 친한 지인들 중 내 장난에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텐데 '아직 난 안 당했는데?'라고 안심하고 다면 아직  친해 그런 거니 친해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흐흐흐.


청소를 마치면 독서를 위해 책을 들고 소파로 걸어간다. 눈치 빠른 흰 강아지는 엄마의 수차례 반복된, 마실  것과 책 비슷한 네모난 것을 집어 드는 행동을 보면 주방에서 다다다다 발소리를 내며 꽁무니를 쫓는다. 이제 막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랑 뭉개기 타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평소 독서루틴은 일단 소파에 자리를 잡고 내 키만 한 롱베개를 가로로 무릎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책을 둔다. 그 자세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강아지도 소파로 올라와 내 허벅지에 자신의 몸을 한껏 붙이고 다시 자거나 놀아달라고 눈에서 불꽃 레이저쏘아댄다. 심할 땐 책 위까지 기어 올라와 정면에서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못 이긴 척 쓰다듬어주면 신나서 손을 핥으려고 하거나 그대로 주저앉아 독서를 방해한다. 내 황금 같은 독서 시간을 가로막는 괘씸한 이 녀석을 당장! 쫓아내고 싶지는 않다. 엄마랑 함께하고 싶다고, 사랑 좀 더 달라고 애교 부리는 강아지의 죄명은 무죄이니까. 좋으니까 좋다고 속을 다 보여주는 그 순수함이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워 죽겠다.


딸과 평소에 대화하듯이 밀크에게도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물어보곤 하는데 강아지도 훈련을 시킬수록 지능이 더 좋아진대서 아기 때부터 꾸준히 하는 질문들이 몇 개 있다.

"밀크야, 어야(산책) 갈까?"

"밀크야, 오리까까 먹을까?"

"엄마 목욕하고 올게, 기다려?"

"밀크, 물 먹자?"

등등인데 물어볼 때마다 매번 고개를 갸우뚱, 축 처진 귀 안테나를 앞뒤로 움직이며 내 말에 온 신경을 모아 집중을 한다.  문득 그런 흰 녀석을 보며 '강아지도 저렇게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데 사람은 그만큼 노력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이젠 강이지에게서 내게로 항하고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우린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을까. 짧은 시간에 나의 이야기하기도 바빠, 들어주는 에 대한 수고로움과 배려심 같은 건 잊은 지 오래 아닐까. 어쩌면 내가 하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호기심 있는 소재라 상대가 당연히 관심 있어하는 거라 착각하며 지내온 건 아닐까 한 번쯤 짚어보고 싶었다. 대화는 핑퐁이다. 전체의 1:1 비율을 맞출 때가 가장 이상적인 대화의 패턴이라고 한다. 혹시 상대방과 헤어지고 난 뒤 너무 이야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에는 꼭 상대가 이야기할 시간을 넉넉히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세상에 일방적인 것을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아이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리 나보다 덜 살았고 미숙한 영혼이라 해도 아이가 본인의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고 또 그것을 부모가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살아도 내가 너보다 더 살았지 그러니 넌 그냥 우리말 듣고 그대로 하면 돼'가 아니라 '너의 생각은 그렇구나. 조금 더 인생을 살아본 엄마(아빠)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너에게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구나.'하고 아이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말을 해주면 어떨까.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정신을 집중하고 세심하게 잘 들어야 한다. 표정과 말의 뉘앙스를 놓치는 순간 잘못된 번역으로 오해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으니 말이다. 대화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귀로 듣고, 보는 눈으로 타인의 말을 해석하여 다시 내 에서 곱게 걸러내어 입 밖으로 따스히 전하는 행동이니까.


오늘부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해석하기 위해 눈 맞춤을 더 자주 해야겠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의 입장으로 다가가기 위해 인정과 지지의 마음을 내보여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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