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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Dec 20. 2024

우리의 가을을 수놓은 성수동

벌써 겨울

우와~

루에게 편지 쓴 게 엊그제 같은데 1주일이나 지났다니 믿기지가 않아. 너랑 즐겁게 편지를 주고받으니 더더 시간이 빨리 흐르는 듯해. 벌써 7번째 편지라니 너무 신기하지 않아?


올해 가을은 성수동에서 너랑 보냈던 시간들로 가득 채운 것 같아. 사실 난 밖에 잘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라 약속이 없는 날에는 혼자 집에 있는 걸 좋아해. 딱히 집에서 사부작거리는 것도 없고 그냥 조용히 책을 보거나 유튜브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게 그렇게 꿀맛인 거 있지. 바글바글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보다는 호젓하고 차분한 느낌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러다 졸리면 잠이 드는 그런 나른한 하루하루가 참 좋아. 그런데 세상에. 내 친구 루는 세상 부지런쟁이잖아. 호기심 많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 좋아하는 너와 다시 만나면서 내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지 뭐야. 요즘 핫플레이스라는 성수동도 다 가보고 말이야. 평소에 우리 집 앞도 잘 안 나가는 나에게 성수동은 미지의 영역이었는데 덕분에 자주 방문하다 보니 그곳의 분위기에 슬슬 적응이 되더라. 역시 사람은 새로운 걸 직접 보고 느끼는데서 오는 감흥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 아이 위해서는 동분서주 바쁘게 쏘다니면서 날 위해서는 한 발짝도 내딛지 않는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거든.


처음 성수동에 방문한 날 기억해? 편지 쓰려고 동기 작가님들과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회에 갔던 날의 사진을 찾아보니 우리들 얼굴이 정말 밝더라. 환한 미소가 참 아름다운 분들과 이렇게 브런치 작가로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브런치작가임을 기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참 많이 설레었어. 슬초2기 동기들을 위한 쪽지도 남기고 우리끼리 사진도 찍어주면서 깔깔대는 모습이 꼭 10대 소녀들같이 순수하고 예뻐 보였어. 물론 그 자리에 네가 있어서 10배, 20배는 더 즐거웠단다, 친구야.


그로부터 1주일 후 문학과 지성사 팝업 스토어에도 방문했지. 동기 작가님들과 간단하게 브런치 하고 들른 '찰나의 서점'은 내부는 작았지만 아기자기한 디스플레이와 읽고 싶은 책들만 쏙쏙 골라 진열해 놓으신 센스가 돋보이는 곳이었어. 동기들 각자 본인이 원하는 책을 고르느라 초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브런치 작가가 된 게 아니구나, 책에 다들 이렇게 진심이구나,를 느끼기도  날이었어. 우리는 읽고 쓰는 걸 습관으로 하는 사람들이니까, 또 이 루틴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각자 자신만의 책을 고르고 다 같이 오늘의 운세도 뽑아보는 이벤트도 재미있었어. 흠, 그때 내 운세는 뭐라고 더라. 루는 뭐라고 나왔어? 궁금 궁금해.


이 날 '매디슨 카운티 in 성수' 북카페도 들렸더라고. 10분 정도 걸어야 했는데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는지 수다 떨면서 가다 보니 금세 도착했지. 열심히 구경하고 사진 찍고 우와우와 감탄하면서 어여쁜 인테리어, 읽고 싶은 책들 눈에 가득 담아왔던 것 같아. 어린이 코너에서는 네가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을 반짝이면서 너의 아이들 어렸을 때 읽혔책들이라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네가 얼마나 자식 교육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어. 너의 그런 지극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그렇게 똘똘한 아이들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매사 최선을 다하는 엄마를 둔 덕에 네 아이들은 훌륭하고 착하게 잘 자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나도 읽고 싶은 스릴러물이 보이길래 카메라에 책 제목을 담아왔어. 아직 밀린 책들이 많아서 당장은 읽지 못하겠지만 새로운 책을 발견한  자체로도 참 즐거운 일이란 걸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끼는 것 같아. 


10월의 마지막 성수는 'Point of View' 소품샵이었지? 초등학생 때부터 문구류에 무척 집착하고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 때에는 필통이 벽돌처럼 딱딱할 정도로 펜을 꽉꽉 담아서 다녔는데 수업 내용보다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필기에만 치중했던 그 시절의 내가 문득 떠오르더라. 그때의 문구류랑은 비교도 안되게 세련되고 질도 좋은 제품들을 보면서 이거 아까워서 어디 쓰겠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어. 우리 어릴 때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하시면 되게 고리타분하고 없어 보였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보니 나도 정말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 하나하나가 너무 예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눈으로 감상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고마운 동기친구가 펜을 하나씩 우리한테 선물해 주었잖아, 홍홍. 필사할 때 쓰라고. 진짜 깜찍한 그 마음에 감동받은 거 있지. 난 진짜 인복이 많아. 너를 만난 것도, 이렇게 따스한 동기님을 만난 것도 다 내 복이지 뭐야.


헤어지기 아쉬워 카페에 들러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우린 또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고, 결론은 아이들 바르게 잘 키우자였지만 그게 또 엄마인 우리가 해야 할 몫이기에 토닥토닥 마음을 어루만지며 헤어졌던 것 같아. 서로에게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있어 마음이 참 든든했어. 


그렇게 올해 가을은 성수동에서의 추억으로 물들었다 싶었는데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네? 겨울의 그곳은 또 어떤 분위기일까? 이번에 만나면 따뜻한 차를 앞에 호호 불어가며 수다를 떨어야 할 것 같은데 분위기 좋은 성수동 카페 추천 좀 해주겠니? 검색의 여왕 루가 찾아낸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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