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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Apr 05. 2024

옆 동에 놓인 자전거를 타다가..

배려의 기억

넘어져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들장미소녀 캔디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 가사는 나의 이야기도 된다? 무슨 말이냐면요...


어릴 때 엄마 심부름으로 두부나 콩나물을 사러 다녀올 때면 11동 우리 집 옆 10동 1층 입구 초록색 자전거 한 대가  항상 놓여있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타기엔 안장이 높아 보여 어른용 같았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런지, 군데군데 녹이 슨 부분이 보이는 낡은 자전거였다. 나는 액티브운동들을 어릴 때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여자 친구들이랑 인형놀이나 소꿉놀이, 종이인형 자르고 놀기 등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초록색 자전거내게 자꾸만 '나를  번 타보지 않겠냐'라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볼품없는 행색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자꾸만 내 시선을 사로잡았. 우리 집에 내가 타기엔 조금 낮고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가 있었지만 그건 주로 어린 동생이 타서 초등생인 나는 두 발 자전거가 타고 싶긴 했다. 그렇다고 새 자전거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니 딱히 오래 탈 것 같지도 않아 바람만 있었을 뿐 그러고 말았었다. 그런데  자전거는 자꾸 타보고 싶 탈 수 있을  같다는 자신 만만한 마음이 들었다. 번쩍번쩍한 새것도 아니겠다, 그 자전거를 누가 타는 걸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딱히 주인도 없어 보이는데 마음먹은 기회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았다.


드디어 자전거를 직접 타보기로 결심. 벽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조심스레 끌고아파트와 주차장 사이의 길갔다. 혹시 주인이 너 뭐 하는 거냐 호통을 칠 수도 있어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시 돌려줄 마음을 품고 살펴봤지만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그럼 이제 타볼까 싶어 자전거 손잡이를 양손으로 꽉 잡고 안장 너머 페달 쪽으로 오른발을 옮겼다. 그러자 엉덩이가 자연스레 안장 위이동했고 그런데 헉, 생각보다 높았다. 이미 왼쪽발 발끝으로 한껏 포인(발끝을 쭉 펴서 발등을 둥글게 만드는 발레동작)된 상태였 이 발만 땅에서 슉 떼어 페달에만 옮기면 나는 자전거와 하나가 되어 앞으로 씽씽 나갈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왼발을 얼른 들어 페달로 올리려는 순간, 중심을 잃은 몸은 왼쪽으로 꽈당 넘어져버렸다. 진짜 별이 반짝반짝 보이게 되게 아팠다.  손바닥은 까져 피가 조금 보이고 무릎도 멍든 느낌.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왼발이 잠깐 붕 뜬 순간 묘한 짜릿함이 느껴지면서 몇 번만 더 연습하면 페달에 왼발을 제대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친김에 몇 번 더 해봤지만 계속 넘어지기만 하고 상처는 늘어갔으며 자꾸만 넘어져대니 드디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오늘은 여기서 접자 싶어 아픈 몸을 이끌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자전거 생각만 났다. 내 몸 아픈 건 생각이 안 나고 왜 자꾸 넘어지는지 그게 속상할 뿐이었다.


몸의 상처가 거의 아문 어느 날, 다시 자전거 타기를 시도해 보았고 역시나 넘어짐의 반복이었다. 지쳐서 '에이, 한 번만 더 해보고 그냥 집에 돌아가자.' 했는데 순간, 페달에 왼발이 올라가면서 오른쪽 발과 페달에 힘이 실리고 자전거가 조금씩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속도조절을 전혀 하지 못하고 직진으로만 쌩쌩쌩 달리다 보니 무서워져서 브레이크를 잡다가 다시 아스팔트 위에 꽈당 넘어졌다. 그렇지만 그날은 며칠 전과는 다르게 큰 수확이 있었다. 바로 자전거를 진짜 타 본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잘 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에 가득 차서인지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다음날, 어제 막바지에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고 이날은 바로 앞으로 휙휙 나아가졌다. 유턴해서 다시 돌아올  있었고 속도도 적당히 조절되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젠 좁은 주차장길이 짧고 좁게 느껴져 놀이터와 상가들이 있는 으로 진출해보고 싶어졌다. 씽씽씽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날려 주었고 나를 바라보는 동네 동생들이 왠지 부러워하는 느낌이 들어 괜히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이제는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께 인사하는 여유까지 갖추게 되었다. 벌써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려 해 자전거를 제자리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너무 기뻐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드디어 내 힘으로 자전거를 타게 되다니, 그것도 크나큰 언니 오빠들이 타는 자전거를 초등학생에 몸치인 내가 타다니 이건 인간승리였다.


그렇게 나는 거의 6개월간 초록 자전거를 내 자전거인 양 재밌게 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려고 10동 앞을 지나가는데 경비아저씨께서 초록색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걸 보게 되었다. 순간 얼음이 되었던 것 같다. 주인이 엄연히 있던 자전거였는데 내가 타려 할 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건 그 아파트의 주민들 자전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경비 아저씨의  자전거로 연습을 하면서 수백 번 자전거를 넘어뜨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나게 타고 다니는 모습을, 아저씨는 분명 경비실 창문으로 다 보고 계셨다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아저씨는 단 한 번도 나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냥 두셨던 거구나. 조심해서 타라고 언질이라도 주실 법 한데 아예 아는 체를 안 하셨구나. 갑자기 아저씨의 깊은 배려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저씨의 자전거를 두 번 다시 타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죄송했다고, 그리고 너무 감사했다는 쪽지라도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 마음에 겁도 났고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의 깊은 배려심으로 철없는 초등학생이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혼쭐 났다면 눈물, 콧물 쏙 빼고 속상한 마음 한가득인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그분 덕분에 아이는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즐거운 추억을 그득하게 채울 수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드셨을 아저씨께서 이 글을 보시고 흐뭇하셨으면 좋겠다. 그때 못 드린 쪽지를 대신한 긴 편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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