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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Apr 19. 2024

날아라 병아리

굿바이 얄리

삐약삐약 삐약삐약.

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길, 작은 상자에 노오란 병아리들이 한마음이 되어 여린 목청으로 목놓아 울고 있다. 나 좀 봐달라는 건지, 나 좀 구해달라는 건지, 친구들과 함께여서 즐겁다는 건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같이라서 더욱 시끄러운 짹짹이들. 고 녀석들 가까이서 보니 개나리색 보드라운 솜털을 해가지고는 눈을 꼭 감은 채 열심히 울고 있구나. 많이 졸린 것 같은데 누워서  자면 안 되나. 계속 서있으려 다리 아프지. 20분째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병아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니 이젠 병아리보다 내 다리가 더 저리고 아픈 것 같았. 병아리를 파시는 할머니는 사지도 않으면서 수십 분째 주야장천 병아리만 쳐다보는 나를 그래도 훠이 훠이, 쫓아내지는 않으신다. 할머니도 저 병아리들처럼 계속 졸고 계신 걸까, 아니면 저 꼬마가 병아리는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 구경만 하나보다 가엾이 여겨 그냥 두시는 걸까. 아무렴 어때, 이렇게 귀엽고 조그만 솜뭉치들을 여기 아니면 볼 수도 없는데, 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젠 진짜 다리도 너무 아프고 더 이상 하교하는 친구들도 보이지 않고, 할머니도 슬슬 집에 가시려는 눈치라 나도 집에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일어서려는데 아까부터 유독 친구들에게 치이고, 우는 소리도 힘이 별로 없는 병아리 한 마리가 눈에 밟혔다. 이렇게 헤어진다면 저 아이는 분명 내일이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부랴부랴 주머니를 뒤져 봤더니 다행히도 100원짜리 동전 5개가 손에 잡혔다.

"아줌마, 병아리 얼마예요?"

"200원. "

"얘 하나 주세요."

"사료는 있어?"

"아니요, 사료는 얼마예요?"

"100원."

@광주일보 DB

할머니는 검정 비닐봉지에는 병아리를, 투명 비닐에 담긴 노란 사료는 내 손에 쥐어주셨다. 드디어 내가 병아리를 집에서 키우게 되다니, 요 귀요미와 이제 같이 살 수 있다니 설렘에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 쳤다. 헉, 근데 한 가지 잊은 게 있네. 엄마께 허락을 받지 않았어. 분명 엄마는 병아리는 집에서 못 키우니까 절대로 사 오면 안 된다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내 맘대로 사가지고 가다니, 이 일을 어쩌나. 이 불쌍한 병아리를 어디에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데리고 가면 엄마가 많이 화내실 텐데 큰일 났다. 이런 상황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표현하는 걸까. 그래도 병아리랑 헤어지는 게 더 싫으니 엄마께 혼나더라도 일단 집에 가보자. 참 이상한 건 매번 이렇게 죄를 저지르고  때면 왜 평소보다 집에 빨리 도착하는 걸까.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띵동.


현관문이 쓰윽 열렸고 엄마의 표정 황급히 살펴보니 내가 들고 있는 '문제의 검정 비닐봉지'눈이 고정돼 계셨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부터 병아리는 이미 삐약삐약 울어대고 있어서 엄마는 문을 여시기 전부터 내가 병아리를 데리고 왔다는 걸 눈치채신 거였다. 

"너 지금 이게 뭐야?"

"어? 병아리."

"병아리 엄마가 안된다고 했잖아."

"근데 얜 너무 불쌍하고 약해 보여서 내가 살리려고 데려왔어."

"내가 못살아. 나는 병아리 모르겠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나는 몰라. 아우 저걸 어떡해."

혼날까 봐 사시나무 떨듯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을 해서인 엄마는 다행히도 나와 병아리를 집 밖으로 쫓아내시진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우리에게 잘해주실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래, 내가 돌봐줄게. 병아리에게 집을 만들어주고 싶어 집 안을 둘러보니 마침 작은 상자 한 개 눈에 띄었다. 검은 봉지에서 병아리를 조심스럽게 꺼내 상자 안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아까 받은 사료도 담았다.

"병아리야, 이제 여기서 푹 쉬면서 편하게 밥도 먹고 잠도 자렴. 빨리 건강해져서 우리 같이 재밌게 놀자."

"삐약삐약삐약"

대답을 해주는 건지 아까 학교 앞에서의 모습보다 훨씬 목소리도 커지고 눈도 가끔씩 뜨는 것 같아 데려오길 잘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대신 밤새 잠도 안 자고 계속 울어대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병아리가 베란다로 내쫓기긴 했지만 그래도 이 작은 친구 덕분에 내일이 기다려지는 오늘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등교해서도 계속 병아리 생각만 머리에 맴돌아 빨리 집에 가서 손에 올려놓고 쓰다듬으며 얘기 나누고 물도 먹여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병아리가 계속 시끄럽게 울어서 엄마의 심기를 건드려 진짜 쫓겨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어 집으로 빨리 날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교 후 날랜 걸음으로 집에 도착해 베란다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투명창으로 내다 보이는 상자 안에는 신문지가 깔끔하게 재단되어 깔려있고 물과 사료 그릇도 플라스틱에서 사기로 업그레이드되어 상자 한쪽에 깔끔히 놓여 있었다. 병아리는 그곳에서 뿌직 똥도 싸놓고 밥도 먹고 잘 지내고 있었나 보다. 엉성한 박스에서 러브하우스로 변신시킨 장본인은, '내가 못살아.' 한탄을 하시던,  우리 엄마였다. 갑작스럽게 병아리를 들이밀던 어제는 당황을 하셔서 냉담한 모습을 보이신 거였지, 마음 약한 엄마는 결국 내 마음을 이해하고 병아리를 받아주시기로 한 거였다. 고마운 마음에 폴짝폴짝 뛰면서 엄마께 이거 엄마가 만든 거냐고 여쭤보니 나 아님 누가 그렇게 만드냐며 괜스레 툴툴거리셨지만, 그 너른 마음이야 내가 잘 알지 말이다. 그날도 병아리랑 우리 집 구경도 시켜주고 밥도 먹이고 물도 먹이고 잘 때까지 붙어있었다. 나의 해피 바이러스, 꼬마 병아리.


다음날도 병아리 생각만 한 보따리 하다 하교를 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웬일인지 집이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부리나케 베란다로 뛰어가 병아리 집을 살펴보니 병아리가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거다. 불안한 마음에 엄마께 병아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여쭈어보니, 엄마가 집안일 마치시고 상자 안을 살펴보니 병아리가  일어난다는 거다. 그럴 리가 없어, 아침까지만 해도 씩씩하게 잘 지냈는데 갑자기 왜 죽어. 배가 고픈 것도 목이 마른 것도, 만들어준 집이 싫은 것도 아니잖아. 근데 죽긴 왜 죽냐고. 답답한 마음에 병아리의 몸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걸로 보아 내가 오길 기다리다 지쳐서 잠이  같은데 흔들어 깨워볼까. 내가 학교에서 더 빨리 뛰어와 함께 놀아주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뚝뚝,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만 떨어졌. 네가 너무 좋고 너랑 노는 게 즐겁고 매일 너만 생각했는데 이젠 다시 널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름도 채 지어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내 노란 병아리 짧지만 따스한 추억을 남겨준 그립고 슬픈 친구가 되었다. 암컷이 아닌 수컷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따로 상자에 분리되어 이곳저곳 병아리장수들을 통해 100원, 200원에 판매되던 가련한 너희들. 그 서러운 영혼이 부디 하늘에서는 평온하게 잠들길 진심으로 바랄게.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 두 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우리 함께 한 날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지
어느 날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슬픈 눈으로 날갯짓하더니
새벽 무렵엔 차디차게 식어있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날아라 병아리], 넥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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