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느려 터진 책 생활>로 정해놓고 보니 진짜 느려 터졌다. 자랑스럽게 도서관에서 빌린 많은 책들을 고스란히 반납하는 참사를 겪고, 이제 정신을 차렸다.
'내가 욕심이 지나쳤구나.'
물리적으로 내가 읽을 수 없는 양의 책을 꾸역꾸역 빌려다 놓고 다른 사람들도 못 보게 한 꼴이다. 도서관을 이용할 땐 이점을 꼭 참고해야 한다. 배려심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책들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이 책 한 권에 집중했다. 사실 저절로 집중이 됐다. 상당히 재밌고 잘 읽힌다. 골드문트 캐릭터가 정말 생생하다. 물론 나의 사적인 상상이 들어가서 그렇다. 그게 뭐냐 하면....
'골드문트'라는 인물을 내가 요즘 한창 빠져 있는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로 상상하면서 읽고 있는 것. 소년스러움과 괴짜스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과 전체적인 이미지가 너무 흡사하다. 만약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골드문트'역으로 '제시 아이젠버그'를 적극 추천한다.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어쨌든 그렇게 상상을 하면서 읽으니 소설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이제 중반부의 끝부분을 읽고 있는데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엿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현재 12장을 읽고 있는데 초반 강렬하게 등장했던 나르치스가 좀처럼 다시 나타나지를 않는다. 이 소설이 묘사하는 '나르치스'라는 인물은 나에겐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더 보고 싶은데 등장하지를 않는다. 언제쯤 다시 나올까?
나르치스의 등장을 기다리는 재미도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붕 떠 있는 골드문트의 삶은 어떻게 마감이 될까? 나르치스는 언제 다시 등장할까? 그리고 또 어떤 역할을 할까?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고 어서 빨리 다시 보기 시작해야겠다.
그는 예술 자체에 복종했다. 예술은 얼핏 보면 정신계의 여왕 같지만, 실은 하찮은 것들을 너무 많이 필요로 했다. 예술을 하려면 안정된 작업 공간이 있어야 했고, 작업 도구와 목재, 흙, 물감, 금 따위가 필요했으며, 노동과 인내가 요구되었다. 그는 숲에서 누리던 거친 자유를 예술에 바쳤다. 넓은 세상을 만끽하는 자유, 위험을 즐기는 짜릿한 쾌감, 아빈낙도의 자부심을 모두 바쳤다. 그러고도 그는 숨을 죽이고 화를 삭이며 자꾸만 새 제물을 바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