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존재

by Ann

가장 그리운 건 샘돌이의 촉촉한 코다. 건강함을 증명하는, 정말로 내 곁에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촉촉한 코를 다시 한 번만 만질 수 있다면. 그 코를 만질 때 '에이취!'하는 재채기 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샘돌이가 내 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 이름을 떠올리고 좀 더 깊은 기억 속으로 빠질 때면 눈물이 차오른다. 이때쯤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데도 몇 번이나 침을 삼켰고, 잠시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 멈추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 그만큼 그 작은 부피의 생물체는 나에게 아주 크고 깊은 자국을 남겼다.


포메라니안의 털에 치와와 얼굴을 가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모습의 우리 샘돌이. 처음 봤을 땐 영락없는 새끼 포메라니안이었는데 커갈수록 치와와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게 난 좋았다. 우리 샘돌이만의 얼굴이 좋았다. 함께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이 나와 많이 닮았다고 했다. 정말 우리 식구처럼. 난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좋았다. 성격 닮았다는 말은 빼고. 우리 샘돌이는 엄청나게 사나운, 사실은 겁이 많은 그런 강아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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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집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새끼 강아지들을 구경하러 갔었고, 그중 입이 까만 샘돌이를 만나게 됐다. 짜장 소스에 입을 담근 것처럼 새까만 주둥이에 군데군데 검은 털이 나있는 새끼 강아지였던 샘돌이는 다른 친구네 집으로 입양을 갔다가 결국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나와, 우리 가족과 인연이었던 것이다. 사람과 동물 간에도 인연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올 수밖에 없는 인연, 우리 가족과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 사람이 동물을 골라 데려오는 그런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의 인연으로 묶인 사이. 그 인연 덕분에 나는 샘돌이에게 많은 것들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샘돌이는 어땠을까?


잠시 또 울컥했다. 커피로 올라오는 울음을 꾹 누르고 다시 쓴다. 샘돌이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어느 날 엄청 속상한 일이 있어 혼자 소파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던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무척 서러웠던 모양이다. 처음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콧물까지 나오는 바람에 훌쩍훌쩍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때 멀리서부터 샘돌이의 짜작짜작 하는 발톱 소리가 가까워져 오는 게 들렸다. 안 보이던 샘돌이의 모습이 나타났고 나를 보며 걸어오더니 마침내 소파 위로 올라왔다. 갑자기 벌떡 앞발을 들고 일어서서 내 어깨쯤에 올려놓더니 내 얼굴과 눈높이를 맞추고는 자신의 혓바닥으로 내 눈물을 핥아주는 것이 아닌가. 꼬리를 흔들고 귀를 뒤로 젖히면서 연신 흐르는 내 눈물을 핥아주었다.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던 나는 간지러워서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알았어, 알았어 샘돌아~그만해~간지러워~으하하하"


그 이후로도 샘돌이는 가끔씩 내가 기분이 한없이 쳐져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내 등에 자신의 등을 살며시 기대어 눕곤 했다. 그 작은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는 너무 따뜻했고 덕분에 기분이 편안해지곤 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그건 강아지의 습성 중 하나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샘돌이는 내 기분을 알고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 평소 내가 기분이 좋을 땐 결코 등을 내어주지 않는 샘돌이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샘돌이의 등은 늘 엄마의 차지였다. 밥을 주는 사람의 차지.


또 하나의 장면은 샘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날의 장면이다. 나는 그날 그 시간에 남자친구와 이별을 결심하고 그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어느 카페에 있었다.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남겨두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엄마는 울면서 나에게 샘돌이의 소식을 전했다. 아직도 나는 그때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아! 어쩌지, 또 눈물이 찬다. 다시 커피 한 모금만 마시고.......으흠.


이별이고 뭐고 나는 전화로 엄마를 일단 진정시키고 끊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다. 카페 사람들은 전부 날 쳐다봤을 것이다. 주변 상황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그냥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빨리 가야 한다고 나 좀 데려다 달라고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울부짖었던 기억만 난다. 아주 맑고 더운 한낮이었다. 그때 나의 남자친구였던 그는 나를 억지로 진정시키지 않고 그냥 울부짖는 그 상태 그대로 동물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속 깊은 사람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그날 그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뛰어 들어갔으니까. 우리 가족은 그날 샘돌이를 보냈고 나는 그와 헤어지지 못했다. 그 이후로 꽤 오랜 기간 그를 만났다. 샘돌이가 연장해준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 구석구석 아주 은밀한 곳까지 샘돌이가 있었다. 가족들도 알지 못하는 순간들, 사건들에 샘돌이가 있었다. 아주 작은 몸집에 아주 가벼운 부피를 가진 존재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여전히 샘돌이는 나에게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 무언가로 내 안에 존재한다. 아마 우리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만의 샘돌이와의 추억이 진하게 자리 잡고 있겠지. 가끔 그 추억들에 대해 얘기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웃곤 한다.


아직도 샘돌이의 존재가 생생한 나는 좋아하는 노래도 끝까지 부르지 못 한다. 부르다가 목이 콱 막혀버려서. 멜로디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따라 부르다가도 멈춰버린다. 아마도 나는 죽는 날까지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 가을 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 -


태어나서 처음으로 함께 한 반려견 샘돌이.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지낸다는 것에 대한 엄청난 무게감을 알게 되었다. 길 가다 동물을 보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 하는, SNS가 강아지, 고양이 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 나이지만 다시 키울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전체 인생 중에 샘돌이와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아주 진한 자국을 남겼다. 결코 지워지지도 흐려지지도 덮이지도 않을 자국으로 말이다. 그 자국은 결코 함부로 가볍게 충동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나에게 늘 해준다.


그 경고는 아직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고 있는 이유다. 그 대신 우연히 알게 된 유기견 카페에 가 유기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졸졸 따라오던 길고양이 '까망이'를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샘돌이가 떠나고 만난 하얀 양말을 신은 길고양이 까망이는 길고양이 답지 않게 나를 따라다니던 아이였다. 자꾸만 따라와 결국 몇 년을 혼자 지하주차장에서 돌보다가 집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엄마의 가게에서 돌보게 되었다. 처음엔 엄마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 어떤 게 까망이에게 더 좋을까? 밖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 더 좋을까, 아님 우리의 보호 아래서 지내는 것이 더 좋을까.


그런 고민 중에 어느 날 경비실 아저씨로부터 어떤 트럭이 오더니 지하 주차장에 있는 고양이들을 모두 잡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패닉 상태가 되어 까망이를 찾으러 다녔다. 나는 성남시에 연락해 알아보기도 했으나 그런 적이 없다는 얘기만 돌아왔다. 엄마는 몸져누울 정도로 까망이 걱정을 하셨고,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던 우리 가족은 그냥 별 탈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주차장을 갔지만 까망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그냥 우리 집에 데려올 걸 그랬다고, 고민하지 말 걸 그랬다고 까망이에게 미안해했다. 자책했다. 나는 엄마를 위로했지만 내 마음 또한 엄마와 비슷했다. 데려올 걸 그랬나......그렇게 후회와 자책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까망이가 돌아왔다고. 까망이가 돌아왔다고! 그렇게 까망이는 우리 보호 아래 지내게 되었다. 지금은 엄마의 든든한 보디가드이자 말동무이자 재롱둥이다. 나도 종종 까망이를 보러 가게에 놀러 간다. 지금은 나보다 엄마를 더 따른다.


까망이도 우리 가족에게, 특히 우리 엄마에게 큰 자국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충동으로 인해 그 아이를 데리고 오고 키운 것이 아니기에 후회나 미안함은 좀 덜 남을 것 같다. 길에서 쓸쓸하게, 춥고 배고픈 인생을 살다가 떠날 운명이었을 수도 있는 하나의 소중한 생명체를 구해주고 싶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으로 행한 일이니까. 단지 반려동물이 키우고 싶어서, 고양이가 좋아서 돌보게 된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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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을 가지게 해 준 샘돌이에게 정말 너무 고맙다. 책임감의 무게를 알게 해주고 크건 작건 하나의 생명체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 알게 해주고 우리가 그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받는 것이 더욱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 해준 샘돌이에게 정말 고맙다. 내가 샘돌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결코, 절대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알지 못했을 것들이다. 유기견 카페의 아이들, 까망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따듯한 온기를 품고 있던 샘돌이를 안고 화장터로 향하던 그때 그 온기, 무게,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도 가벼웠던 샘돌이. 그렇게 가벼운 샘돌이가 나에게 준 어마어마한 무게의 사랑과 추억이 여전히 넘치고 넘쳐 나를 울린다.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떠올리고 또 떠올리고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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