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걸 좋아했다. 특히 봄이나 가을이 되면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좋았던 기분은 더욱, 나빴던 기분은 조금 더 나아지곤 했다. 나는 산책을 좋아했다.
한 때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이미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주 잘 지내고 있던 이라 내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죽을 때까지 고백할 마음은 없었다. 이대로가 좋았다. 힘은 들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한밤 중에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고백을 했다.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귈 수가 없다고. 나와 생각이 같았다. 생각이 같은 게 이렇게 슬플 줄이야. 아마 우리가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을 거다. 관계라는 게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잘 아니까. 오래 곁에 머물려면 연인이란 이름보단 친구라는 이름이 더욱 유리하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서로의 마음만 확인한 채 전화를 끊었다. 고백을 받았는데 기쁘긴커녕 괴로웠다.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친구로 잘 지내기로 했으니까. 물론 이미 우리의 우정이 살짝 변질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애써보기로 했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잠을 한 숨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혼란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인생 한 번뿐인데, 서로 마음 맞는 사람 만나기 힘든데 그냥 사귀어볼 걸 그랬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나를 단속했다. 머리가 아팠다. 속도 쓰렸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어폰과 휴대폰을 챙겨 밖으로 뛰쳐나갔다. 추운 날씨였는데도 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온갖 잡생각들이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평소 내 눈과 마음을 정화해주던 풍경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온통 그 친구와 그 친구의 고백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 잡생각들을 친구 삼아 걷고 또 걸었다. 이어폰에서는 내 마음도 모른 채 경쾌한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1시간을 걷다 보니 들떴던 마음,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잡생각들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속의 희뿌연 먼지들이 바닥으로 가라앉듯이. 괴로웠던 마음은 진통제를 먹은 것처럼 통증이 차차 사라졌다. 그제야 나무가, 하늘이, 흐르는 탄천의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 인연이 있는 거지. 억지로 되는 건가. 사람의 관계라는 게......
발바닥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픈 줄도 모르고 걸었는데. 땀도 났다. 시계를 보니 2시간 정도 걸은 것 같았다. 더 이상 발바닥이 아파 걸을 수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돌아오기 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머리가 아프지도 속이 쓰리지도 않았다. 혼란스러움은 평온함으로 모드를 바꿨다. 내 할 일이나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와 만났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혹시 술에 취해 한 고백을 잊진 않았을까 추측했었는데 잊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터놓고 편안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역시나 같은 결말로 끝맺음을 지었다. 우리는 역시 친구로 지내는 게 좋아, 하고. 맥주를 다 마시고 가게를 나선 우리는 앞으로 잘 지내보자 했다. 가능한 오랜 시간 동안 곁에 있자고. 나의 감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를 어느새 친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아주 좋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조금의 감정의 찌꺼기도 남기지 않은 채.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긴 산책을 통해 마음을 하루라도 빨리 정리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난 산책을 맹신하게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걷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산책을 하지 않으면서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행동력도 많이 떨어지고.
운동을 싫어한다. 하지만 다시 산책은 좀 꼬박꼬박 해보려고 한다. 비타민을 먹듯이 마음의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마음이 힘들 때 반드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산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