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 준 그녀들에게 박수를

by Ann

성추행, 성폭행, 성희롱 사건들이 하수구의 물이 역류하듯 뿜어져 올라오고 있다. 역한 냄새를 풍기면서. 여성들이 용기가 그것들을 뿜어져 나오게 했다.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은. 현재 미투 운동을 통해 용기 내어 제보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 덕분이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이다.


그들은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한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당해봤을 일들이다. 남자들이 몰랐을 뿐이지. 여성들 중 바바리맨 한 번 안 만나 본 사람 없을 것이고, 여성으로서 기분 나쁜 발언 한 번 안 들어본 적 없을 것이고, 기분 나쁜 스킨십 한 번 안 당해본 사람 없을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도 그들과 같은 남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동네 아저씨는 아직 브레이지어를 하지 않은 초등학생인 나의 가슴을 툭 치며 "너 이제 브라자 차야겠다"라고 말했다. 본능적으로 나는 몸을 움츠렸고 찝찝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냥 친한 동네 아저씨니까 그러신 걸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달랬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찝찝한 기분은 그 아저씨를 볼 때마다 늘 떠오르곤 했다.


바바리맨, 변태들은 수도 없이 마주쳤다. 중학생 때인가. 친구들과 공원에 놀러 갔다가 바지 내린 아저씨가 나를 향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있고, 그냥 지나가는 길가에 세워진 트럭 안에서, 어두운 육교 위에서도 버젓이 그러고 있는 남자들을 봤다. 자주 봤다고 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너무나도 끔찍한 모습들. 그때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고, 떨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곤 했다. 그런 경험들 때문에 저녁에 산책을 나가는 일이 늘 무서웠고, 육교를 지나는 일도, 길에 세워진 트럭을 쳐다보는 일도 나에겐 무서운 일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체육 선생님이 아프지도 않은 어깨를 너무 자주 주물러서 기분이 나빴고, 기술 선생님은 몇몇 여학생들을 벌준답시고(나를 포함해) 기술실로 불러 의자에 앉혀 놓고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라고 시키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여학생으로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 눈을 감고 선생님과 단 둘이 있는 건 무척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모든 학교들을 다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 나는 아빠와 함께 일을 해 그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터에서 나에게 벌어지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각종 추행과 희롱에 대한 얘기들에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며 분노했다. 내가 아빠라는 울타리가 없는 곳에서 사회생활을 했다면 충분히 겪었을 법한 일들이니까.


가장 깨끗해야 할 검찰에서,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학교에서, 가장 순수해야 할 예술계에서 조차 말로 표현할 수 조차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그 외의 곳에서는 얼마나 더 심각했을까. 얼마나 더 숨겨지고 있었을까. 얼마나 더 밝혀내기가 힘들었을까.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어쩌면 해도 안 되기 때문에, 말해 봤자 안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각자 포기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용기를 내어 준 분들 덕분에 이제 참지 않아도 된다는 걸, 든든한 지원군들이 주변에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는 참지 않을 것이고 더는 눈감지 않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런 기운이, 이런 분위기가 계속 힘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한 번의 이슈로 끝이 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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