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 뚜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이미 아늑한 자기 방에 들어가 자고 있을 때 나는 집을 나선다. 혹시 뚜이가 깰까 봐 아주 작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뚜이야, 언니 갔다 올게.”하고 인사를 하면서.
오늘은 어디로 출근을 해볼까. 집을 나설 때까지 결정하지 못하다가 날이 추워 동네에 가까운 카페에 가기로 한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겪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들을 겪고 느낄 수 있는 동네 카페로. 서로 아는 사이인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내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이름이 적힌 쿠폰을 찾아 알아서 쿠폰 도장을 찍어주시고, 콧물을 훌쩍거리면 히터를 세게 틀어주시고, 음료 잔이 비어 있을 때면 물을 더 가져다주시고, 때론 서비스로 다른 음료를 건네주시기도 하는 그런 동네 카페로.
바리바리 싸온 책들을 꺼내놓고 읽기 시작한다. 문유석의 <쾌락 독서>를 먼저. 흔히 내가 생각하는 판사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린 분. 시종 유쾌하고 자신의 독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표지에 그의 직업이 쓰여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 같은 문체와 내용들이 가득하다. 읽으면서 킥킥거리길 여러 번. 그렇게 가볍게 휙휙 책장을 넘기다가 잠깐 멈춰 밑줄을 그었다.
내가 감히 이렇게 책도 쓰고, 신문에 소설도 쓰고, 심지어 드라마 대본까지 쓰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저 두 마디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내가 김영하도 김연수도 황정은도 김은숙도 노희경도 아닌 걸 잘 알지만, 뭐 어때?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는 나만의 ‘풋내기 슛’을 즐겁게 던질 거다.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은 거들 뿐.
어깨에 힘 빼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어깨에 힘을 빼는 거였다. 어깨에 힘을 빼고 지금의 나로 쓰고 읽는 것. 이 문장에 힘을 얻어 짧게 글을 한 편 썼다. 그리고 다시 책 속으로. 그랬다가 다시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다시 책 속으로. 그렇게 책과 글 위에서 시간들을 보낸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온다. 또 출근을 한다고? 맞다. 나는 출근을 하기 전에 이렇게 출근을 한다. 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혼자 집중하여 할 수 있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출근. 이런 나의 시간들을 유지시켜주는, 돈을 벌기 위한 장소로 가는 것이 두 번째 출근.
다시 펼쳐두었던 짐들을 바리바리 싸고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두 번째 출근 장소로 향한다. 첫 번째 출근 장소에서 충전시킨 힘으로 남은 시간들을 보낸다. 다시 내일 첫 번째 출근을 기대하면서.
퇴근 시간이 되면 다시 보따리를 챙긴다. 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내일은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몇 권을 가방에 넣는다. 들어 올리면 묵직하다. 하지만 괜찮다. 가까우니까.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다시 나의 고양이 뚜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심심하게 하루를 보내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뚜이에게 향하는 발걸음이. 내가 빨리 움직이면 빨리 도착할 수 있어서 좋다. 속절없이 어딘가에 실려 어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걸어서, 때론 뛰어서, 때론 여유 있게 내 의지대로 갈 수 있어서.
다시 내일의 첫 번째 출근을 준비할, 뚜이가 있는 집으로 열심히 걸어간다.
나의 출근길은 누구보다 짧다. 하지만 누구보다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