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메모

by Ann

그는 새책보다는 헌책을 선물했다. 그가 선물한 책 속에는 중간중간 메모가 쓰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책을 주면 휘리릭 책장을 빠르게 넘겨 메모를 먼저 확인하곤 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이 궁금한 것이었다. 가장 궁금한 것이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일 시절이니까.


그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을 잘 알았다. 어렵지 않고 감성적인 내용, 혹은 귀여운 내용의 책들. 때론 그 시기에 내가 하는 고민에 대한 답과 같은 책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어쩌면 <지혜의서재>는 그때 내가 받은 것들을 되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느꼈던 따듯한 감정, 고마운 감정들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책 속 메모들은 대부분 따듯했다. 그가 준 다른 물건들은 대부분 돌려주거나 버렸는데 책만은 버리지 못했다. 그 메모들 때문에. 편지와는 다르다. 그 메모는 그냥 그 책 그 자체가 되어버렸으니까.


메모뿐만 아니라 밑줄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밑줄을 발견하면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며 이 부분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바로 알 수 있는 문장도 있었고, 바로 알 수 없는 문장도 있었다.


그를 잊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준 이런 고마운 흔적들은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이 되었으니까. 내 안의 곳곳에서 ‘나’가 되어 숨 쉬고 있으니까.


2020. 1. 11. 토요일 새벽.



IMG_1542.JPG 그가 남긴 책 속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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