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루님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훌륭한 열매를 맺지 않아도’ 장을 읽다가 문득 점점 시들어가는 캣그라스를 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위를 가지고 베란다로 돌진했다.
네 번째 캣그라스였다. 첫 번째 캣잎은 뚜이가 무서워해서 버렸고, 두 번째 캣그라스는 뚜이가 너무 좋아해서 잘 키워보려 했는데 곰팡이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날파리들까지 꼬여 버렸고, 세 번째 캣그라스는 궁디팡팡 박람회에 가서 큰맘 먹고 큰 화분으로 사 왔는데 갈색 잎들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역시나 날파리들이 꼬여 들더니 죽어버렸다.
싹을 틔우는 건 참 쉬워서 좋은데 왜 자꾸만 죽는 걸까. 물도 잘 채워주고 해도 잘 드는 곳에 뒀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캣그라스를 정리하면서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또 어느 순간, 마치 갈색으로 염색한 것처럼 마른 잎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이 좀 부족한가? 물을 채워줬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 보니 그 마른 잎들이 순식간에 늘어나 있었다. 그렇다. 어느 순간이란 내가 그렇게 자주 보지 않았다는 거다. 잊고 있다가 뚜이가 베란다 앞을 서성거릴 때 아! 맞다. 캣그라스! 하며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다. 어떨 땐 생각나서 베란다 문을 열어 보니 엄마가 물을 채워놓으셨다.
그렇게 ‘어느 순간’ 에만 들여다보고 그때마다 말라버린 잎들을 손으로 톡톡 끊어주는 게 내가 하는 전부였다. 싱싱한 잎들은 뚜이 입으로 들어갔고, 마른 잎들은 버려졌다.
무루 님의 책을 읽다가 그렇게 버려져있던 캣그라스가 생각났다. 배랜다 문을 열고 화분을 바라보니 한숨이 나왔다. 반 이상이 갈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버렸다. 제대로 앉아 그 잎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태가 심각했다. 마치 방치된 어린아이의 머리카락처럼 뒤엉켜 있었다. 시든 잎만 잘라내야 하는데 그 잎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엉켜있었다. 일단 보이는 부분들을 잘라냈다. 잘라내고 또 잘라내고.
비가 온 후여서인지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상쾌했다. 시든 잎을 자르고 또 잘라내면서 바람을 맞고 새소리를 들었다. 시든 잎들을 잘라내면서 반성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 고양이가 좋아한다고 이 좁은 화분 위에 그 많은 씨앗을 다 뿌려버렸다. 빽빽하게 자라난 잎들은 자리다툼을 했을 것이고 물이 부족해 항상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숨 쉴 틈조차 없는 곳에 갇힌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욕심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 나의 욕심 때문에......
지금 보니 너무 빽빽하게 잎이 들어차 바람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곰팡이가 생긴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많은 잎을 잘라냈다. 무지하고 욕심 많은 주인 때문에 고통받는 건 이 여린 식물이었다. 발밑에 잘린 잎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화분 속의 캣그라스는 반으로 줄어 휑했다. 어떻게 보면 흉하기도 했다. 한참을 잘라내고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뒤에는 자는 줄만 알았던 뚜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캣그라스에 사과했고, 식물 키우는 데 영 소질이 없지만 요 친구 만큼은 정성스럽게 잘 키워보자 다짐했다. 치열하게 살아남고자 했던 흔적들을 보면서 식물에 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사라졌다. 죽은 잎들의 무게 때문에 모두 밑으로 처져 있던 초록색 잎들을 보면서 느꼈던 참담함은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게 했다. 식물들의 세계. 고양이들의 세계에 이은 또 다른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