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조선시대 여인의 산문집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고

by Ann


2016-04-06 16;34;07.jpg 혜경궁 홍씨 - 한중록




조선시대 여성이 쓴 산문에 대한 호기심


조선시대 여성, 그것도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며느리였던 여성의 산문은 어떨까? 궁금했다. 역사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 산문집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작 책을 받아 들고 읽으니 이것은 산문이 아니라 소설이었다. 그녀의 삶에 너무 크고 굵직한 일들이 연극 무대에 하나둘씩 등장하는 배우들처럼 순서대로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 사건들만 순서대로 배열해도 넘쳐나는 이야기 거리들. 지금은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에 지나지 않지만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며 80년이란 세월을 버틴 그녀에겐 너무나도 거칠고 아픈 인생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기록들에서 고스란히 배어 나와 몇 백 년 후의 나에게도 전해진다. 한 사람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차마 견딜 수 없을 만한 일들을 겪어온 그녀에 대해 연민과 존경심이 절로 생겨났다.




사도세자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마음


책의 첫 부분은 남편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나도 절절하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사도세자에 대한 이해가 깊었는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영조로 인해 상처받고 억울해하던 사도세자를 깊이 이해하고 그의 슬픔에 크게 공감하곤 했다. 반면 그가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면 그녀도 함께 진심으로 기뻐했다.


경모궁(사도세자)께서는 이십이 세가 되시도록 부왕의 능행에 따라가 보질 못하시니라. 봄가을로 이번에는 가실까 마음을 보이시나 한 번도 모 가시니라. 그 일로 또 서러워 울화가 되셨는데, 1756년 8월 1일에 처음으로 숙종릉에 따라가니 기분이 시원하신 듯하더라. 기뻐하고 목욕하고 정성을 다하시며 요행히 아무 탈 없이 다녀오시니라. 가신 사이에 인원왕후, 정성왕후, 선희궁께 다 편지하시고 심지어 자녀에게까지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 편지가 지금 내게 있느니라. 그런 일에는 조금도 병환 계신 이 같지 않으니, 일을 순탄히 마치고 환궁하심을 스스로 큰 경사로 아시더라.


영조께서 더욱 놀라워 노여워하시니, 돌아가신 경모궁께 제대로 된 상례를 어이 거론하리오. 영조께서 그 아드님 병환은 모르시고, 다 불효한 것으로만 돌리시니, 원통원통할 뿐이로다.



뿐만 아니라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나아지기를 늘 간절히 바랐고, 조금이라도 영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호의를 보이면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사해하곤 했는데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흘렸다.



또 그 진노가 조금 준 다음 경춘전으로 오셔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자가 마음이 상하였다 하니 그 말이 옳으냐" 하시니 부자 사이에 그런 말씀이 처음이신지라. 내 뜻밖에 천만 의외의 말씀을 듣고 기쁘고 놀라워 목메어 눈물을 흘리며 "그러하옵다뿐이리까. 어려서부터 자애를 입지 못하여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되어 그러하오이다"하고 여쭈니, "마음이 상하여 그러하였다 하는구나" 하시니라. "상하기를 어이 다 이르리까. 은애를 드리우시면 그렇지 않으리이다" 하고 여쭈며 서러워 펑펑 우니, 영조께서 부드럽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내가 명했다 하고, 잠은 어찌 자며 밥은 어찌 먹는지, 내가 묻는다 하여라" 하시니라. 그날이 1758년 2월 27일이니라.



더 놀라웠던 것은 혜경궁 홍씨가 남편에 대한 원망이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는 것이다. 혜경궁 홍씨는 마음의 병을 얻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비판하는 일이 없고, 그 일들을 모두 어쩌지 못할 병 때문이라고 대신 변명해주는 듯 얘기하고 있다. 실제 그녀의 깊은 마음속 내용은 어땠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한중록의 기록에서만큼은 자신의 남편에 대해 최대한 예의를 지켜 좋게 표현하려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사도세자가 하늘에서라도 그녀의 이 마음을 보았다면 가득 맺힌 한의 티끌만큼이라도 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감정


사도세자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들은 영화 '사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영화 '사도'가 사건의 재구성 외에 꾸며진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중록에서 풍기고 있는 슬픔이 그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영화는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충격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굉장히 슬프게 그려냈는데 그 분위기가 한중록에서 사도세자에 대해 얘기한 부분의 분위기와 매우 닮아있었다. 혜경궁 홍씨의 눈에 그려진 가엾은 사도세자의 모습이 그대로 영화에 옮겨진 것 같달까.



그렇게 사도세자에 관한 부분이나 아들 정조를 양자로 빼앗겼을 때에는 애통하고 애달픔이 가득 묻어있는 문장이, 자신의 혈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비장함과 과감함 원통함이 강하게 묻어나는 문장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쓴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지게 한다.




한유라 하는 것이 자기 시골 동네에서는 양반으로 변변히 이름도 못 내세우던 놈이라. 더욱이 어긋나고 모질고 악독하여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는 어리석고 무상한 놈이라.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게다가 굉장히 논리적이어서 설득력까지 갖추고 있다. 읽으면서 억지스럽거나 지나치게 변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녀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하고 끝까지 흐려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 글을 60이 넘는 나이에 썼다는 것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총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기록을 남긴 해에 그녀의 나이는 무려 72세였다. 과연 나도 그 나이에 이런 총기 어린 당당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지금 시대에도 어려운 일인데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백 년이 넘는 과거에 그것을 해낸 것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혜경궁 홍씨의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집념과 고령의 나이에도 힘 있게 끌고 나가는 논리력과 총기가 부러웠다. 나는 이 세상에 과연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 무엇 하나라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득해지기도 했다.



한중록은 역사의 기록으로써 흥미로운 게 아니라 한 여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조선시대 여인의 산문집, 그녀에게 벌어진 일, 그것들을 겪어내는 과정과 감정 등이 여느 소설책 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흥미가 단순 '재미'일 수가 없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의 아픔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산문집의 역사이자, 한 여인의 슬픈 과거이자, 한 나라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한중록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책이었다. 외국 고전 문학에만 관심을 가져온 나를 한국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어준 작품이기도 했다. 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중록에 비할 수는 결코 없겠지만 무언가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기록이라고 할지라도.



하늘을 부르짖고 귀신을 원망할 뿐이니, 내 겪은 일이 자고로 왕후들에게 없던 일이고, 내 집 겪은 바 또한 자고로 다른 집안에 없던 일이라. 하늘이 밝으시고 주상이 어질고 효성스러우시니, 내 비록 진상이 밝혀짐을 보지 못하고 돌아갈지라도 주상이 시비를 분간하여 내 억울함을 풀어주실 날이 있을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만일 허다한 일들을 기록하지 않으면 주상께서 자세히 아실 길이 없을 것이기에, 닳고 닳은 정신을 거두고 쇠진한 힘을 다하여 이 글을 쓰노라. 글머리에는 먼저 정조께서 날 섬기시던 효성과 내게 전하신 말씀을 옮겨 쓰고, 그다음에는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명백히 알게 쓸 것이라.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자세히 알며, 나 아니면 또 누가 이 말을 능히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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