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벚꽃

by Ann



키도 크고, 재밌고, 유쾌해서 그리고 나에게 잘해줘서 좋았다. 우리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이맘때였다. 벚꽃이 바람에 휘날려 자꾸 내 코를, 내 볼을 간지럽히던 그때였다.


오빠, 오빠 하며 쉴 새 없이 떠들던 나. 또 그걸 쉴 새 없이 재밌게 받아치던 그 사람. 스무 살 치고 꽤나 순진했던 나는 그저 좋았지, 딴생각을 하진 않았다. 키도 크고, 재밌고, 유쾌해서 정말 좋은 오빠였다. 그리고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정말 동생처럼 챙겨주고 잘해줘서 더 좋은 오빠였다.


우리가 걷는 길 앞에, 우리가 지나온 길 뒤에 수많은 벚꽃 잎들이 떨어졌다. 눈처럼 떨어졌다. 우리가 그때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즐거웠던 기분은 기억이 난다. 마냥 즐겁게 까르르거렸던 것 같다. 그때 갑자기 난 바람에 휘날려 자꾸만 나에게 달려드는 벚꽃잎에 손을 뻗었다. 휙. 손바닥을 펴보니 벚꽃잎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얇고 연약한 벚꽃잎 하나가.


"우왓, 잡았다!"


나는 그 꽃잎이 바람에 날아갈까 봐 다시 주먹을 쥐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 오빠에게 말했다.


"어? 누구랑 같이 있을 때 벚꽃잎 잡으면 그 사람이랑 사랑이 이루어진다던데?"


진심으로 아무 의도도 없는 말이었다. 그 말에 대한 그 오빠의 반응이 어째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마도 난 그 반응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피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 말엔 아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얘기하면서...


하지만 신기하게도 몇 달 후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나의 첫 연애이자 지나간 연애. 많이 어렸고 성숙하게 헤어지는 법을 몰랐던 때라 우린 울며불며 헤어졌다. 아니 내가 울며불며 헤어졌다. 그땐 벚꽃잎을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이 원수 같은 벚꽃!!!"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고마운 벚꽃."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벚꽃을 보면 그 오빠 생각이 난다. 그 오빠도 벚꽃을 보면 가끔 내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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