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보고
! 이 글에는 영화 '아가씨'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도 나이가 들고, 딸을 키우다 보니 점차 관심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인간형은 어렵고, 고통받는 처지에 있다가 그것을 싸워나가는 사람이다. 여성이 주로 그런 부분들이 많더라.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이 주가 되는 영화를 만들었을 뿐,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 박찬욱 감독 인터뷰 중에서 -
지난주 일요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영화 <아가씨>를 떠올렸고,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날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내용은 끔찍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비롯해 여성이 남성에 의해 고통받았던 일들이 다뤄졌다. 그저 사람이 사람에게 가한 고통과는 다르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그 방송을 보고 저마다 다른 고통 내지는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살면서 남성들로부터 크고 작은 두려움을 느낄만한 일들을 한 번쯤은 당해 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런 일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정상적인 보통 남성들과는 다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자신의 충동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거나 여성에 대해 아주 무지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남성들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한 주변의 경험담을 듣거나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게 되면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남성들에게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보통 그런 사건의 가해자들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멀쩡하게 생긴 것도 그 경계심을 키우는데 한몫한다.
초등학교 시절 조금 성숙했던 내 친구는 당시 스스로를 대학생이라고 말하는 오빠들이 자꾸 따라오고 치근덕 거려 등하굣길을 무서워했었고, 나 또한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르는 남성들에게 이상한 내용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엔 난생처럼 바바리맨을 보고 기절초풍할 뻔했었다. 종종 바바리맨이 티브이나 영화에서 희화화되는 경우가 있어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충격을 가볍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한참 민감할 나이에 처음 그런 걸 접한 사람들은 그 충격을 말로 표현 못한다. 몇 달 동안은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다 그 바바리맨처럼 보일 정도다.
나는 아가씨를 보면서 히데코(김민희 역)라는 인물이 이런 크고 작은 고통, 상처,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여성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정상적인 남성들의 시선, 압박, 강요, 무언의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지 못하고 고통받는 여성의 상징 같았다. 히데코는 큰 저택에 갇혀 이모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모든 걸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하녀로 들어온 당차고 씩씩한 숙희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그녀의(숙희) 손을 자신의 성기에 갖다 대며 조롱하던 백작(하정우 역)에게 시원하게 욕을 날려버리는 자신의 하녀, 숙희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늘 지질한 남자들(백작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만 일하던 히데코는 숙희를 만나면서 자신의 욕망, 욕구에 눈을 뜨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숙희 또한 백작에게 조롱당하고 이용만 당하다가 히데코의 도움을 받아 오히려 그 반대로 통쾌하게, 제대로 뒤통수를 친다. 히데코와 숙희는 그렇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고, 그것은 그 두 아가씨의 자유로 향하는 발걸음을 위한 용기가 되어 준다.
사랑이 불러일으킨 확신과 그 확신이 불러일으킨 용기를 가진 그녀들은 누구도 막지 못할 질주를 시작한다. 숙희가 히데코가 고통받아온 코우즈키(조진웅 역)의 서가에서 그의 책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물에 던져버리고, 잉크를 부어버리는 그 장면에선 마치 불도저가 거대한 건물을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 여리고 작은 몸집의 두 여성이 말이다. 특히 앞장서서 그 일을 하는 숙희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숙희가 끝내 뱀머리를 날려버릴 때는 너무나도 통쾌했다. 날려버리는 동시에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이스 샷~!!"
히데코와 숙희는 손을 맞잡고 그 저택을 뛰쳐나가며 함께 웃는다. 그때 그 모습에선 밝고 당당한 힘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당당한 행복이 순간 그녀들에게 뿜어져 나왔다. 그녀들이 손을 맞잡고 이뤄낸, 해낸, 쟁취한 당당한 행복이었다. 지질한 남성들로부터, 그 현실로부터 쟁취한. 히데코와 숙희는 그 전에 한 번 더 손을 맞잡는데 바로 두 사람의 첫 섹스 신에서다. 애정 신에서 손을 잡는데 그것이 결코 에로틱한 느낌이 아니었다. 함께 연대하는, 결의를 다지는 듯한 비장한 느낌의 맞잡음이었다. 그때도 그녀들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녀들은 다시 손을 맞잡고 함께 그 저택을 탈출한 것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다소 노골적이고 수위 높은 이 영화에서의 섹스 신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단지 그 장면의 수위에만 관심을 두거나 집중한다면 과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녀들이 비로소 스스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성장하고 스스로의 행복을 쟁취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의 애정 신은 박찬욱 감독이 응원하는 여성들의 해피엔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녀들의 웃고 있는 얼굴 표정, 웃음소리, 자유로운 몸, 그것을 환하게 비추는 밝은 조명을 통해서 말이다.
다시 처음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로 돌아가 보면 이 영화는 감독이 여성들을 응원함과 동시에 자신의 딸이 살아갈 날들, 공간들 안에서 여성들이 이렇게 행복하고 당당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비정상적인 남성들로 인해 멀쩡히 정상적인 남성들과 상대적으로 힘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불편을 겪고 고통받고 상처받는 일이 없는 세상. 그럴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숙희와 히데코가 손을 맞잡았듯 여성들도 당당하게 용기를 내고, 그녀들을 도와줬던 숙희의 동료들, 특히 그중 유일한 남성이었던 구가이(이동희 역)처럼 남녀 가리지 않고 서로 뭉쳐 돕는다면 지질하고 한심하고 흉측스러운 그 백작들 같은 사람들을 몰아내고 서로서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분명 불편하게 바라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떠올릴수록 참 아름다운 영화였다. 결국 모든 것을 극복하고 그 끝에 행복하게 웃는 그녀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내려다보는 밝고 따뜻한 시선의 달도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그 감정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감정이라면, 아름다운 것이다."
- 박찬욱 감독 인터뷰 기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