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굉장히 무시무시하다가 따뜻함을 느끼다가 외로워지게 만드는 소설. 그렇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면서도 결국 하나같은 참 특이한 소설이었다. 물론 각기 다른 느낌의 1부, 2부, 3부는 독립적인 작품이면서 속편이기도 한 단편들이다. 생전 처음 보는 한 권의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넘쳐나는 이야기들. 이 소설은 '나도 한 번 소설을 써 볼까?' 혹은 '아,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구나'하는 생각들을 감히 하게 만든다. 제목에서처럼 '거짓말'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그 덕택에 나는 종이 몇 장,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한 개 그리고 커다란 노트를 한 권 사서 나의 첫 번째 거짓말을 적기 시작했다."
평소 글을 쓰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쓰고는 싶지만 아니 써 보고는 싶지만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읽을 때마다 압도되고 기에 짓눌리는 소설들을 접하면서 소설은 나에게 조금도 다가설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방대한 양과 깊이를 또 그것을 만들기 위한 수고를 나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짧게나마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부에서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끊임없이 노트와 연필로 적어댔던 이야기처럼, 2부에서 루카스가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처럼, 3부에서 클라우스의 자전적 이야기처럼. 물론 잘 쓰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고 소설이 결국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이라는 이 책의 테마가 별안간 내 무릎을 치게 했다. '그래 맞아. 소설은 거짓말의 일부지.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실존 인물이나 사건을 진실과 다르게 만들어내는 것이 소설이지.'
"이 모든 것은 거짓말에 불과했다. 내가 이 도시에서 할머니 집에 살 때, 분명히 나 혼자였고, 참을 수 없는 외로움 때문에 둘, 즉 내 형제와 나라는 우리를 상상해왔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소설을 쓰는 것,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전보다는 아주 조금 다가선 것 같았다. 이 소설의 2부는 작가가 "소설은 그냥 이렇게 써 보면 되는 거야~"하고 예시를 여러 개 보여주는 것처럼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사연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왔다가 사라지고 나왔다가 사라진다. 작가가 "어때? 봐! 쉽지?" 하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예전 EBS에서 "참 쉽죠?"하며 슥슥삭삭 그림을 그렸던 밥 아저씨처럼.
페테르 씨, 야스민과 마티아스, 빅토르 씨, 클라라, 불면증 환자 등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소설 안에 또 다른 작은 소설들이다. 2부를 읽으면서 나도 아주 짤막하지만 나왔다가 사라지는 등장인물 한 명만 만들어볼까? 하는 충동이 잠깐 들기도 했다.
이 소설은 형식상 결국 전체가 거짓이다. 1부는 루카스의 거짓, 2부는 클라우스의 거짓, 1,2,3부 전체는 작가의 거짓. 작가는 자신과 자신의 친 오빠를 각각 루카스와 클라우스에 투영해 일어나지 않은 일과 실제 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어린 시절 친했던 친오빠와 갑자기 떨어져서 지내게 됐고 그 고통이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치면서 루카스와 클라우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 외에도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면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결국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지만 실제 이야기라기 보다 그녀의 이야기를 변형한 일종의 거짓말인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해서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창작이라는 것은 상상과 거짓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그 무엇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막연하게만 여겼던,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던 소설 쓰기, 이야기 만들어내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소설에 아주 더디게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소설을 쓴다는 것이 너무나도 멀고도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렇게 거짓을, 상상을 하면서도 그 안에 진짜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과장하거나 움츠러들거나 회피하면 그 이야기는 완전히 가짜가 된다. 자신을 온전히,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만이 진짜 소설,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난 언제쯤 그런 용기가 생길까.
지난 번 읽은 '파이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 읽기에 대한 즐거움에 흠뻑 빠졌고, 이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으면서 이야기 쓰기에 대한 흥미가 새로이 생겼다. 한 마디로 나는 요즘 문학의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