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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Nov 04. 2020

통역 준비만큼 중요한

얼음 깨는 시간(ice breaking)

  오랜만에 현장에서 하는 통역을 했다. 결국은 줌을 통해 중국과 연결을 하지만, 주요 통역 대상 옆에서 하는 통역은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조심스럽기 때문에 꽤 새로운 기분이었다.

  최근 화상 통역을 하다가 느끼게 된 의뢰인이 옆에 있을 경우의 장점은 사전 준비와 아이스 브레이킹이 가능하다는 것.

  사전 준비는 원래 통역사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통역 직전 의뢰인과의 대화만큼 중요한 사전 준비가 없다. 자료로 보는 기업의 니즈와 실제 관계자의 입으로 듣는 기업의 니즈는 차이가 있다. 보다 실질적이고 보다 구체적이다.

  이번에도 미팅 시작 전에 남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미팅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시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는 배경과 비전을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와 더불어 약간의 우려 섞인 목소리로 받은 질문, “IT 쪽은 잘 아세요?” 아마도 예전에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험이 있으리라. 전에 비슷한 업계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조금은 안심하시는 것 같았다. 물론 유사 업계에서 일을 했어도 자료 공부는 필수고 그 정도 공부로 전문가는

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조금은 쉽게 공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공부하며 준비했던 텀 리스트를 보여드리며 혹시 잘못된 용어가 있는지 봐달라고 했다. 원래 이 정도까지 더블체크받을 여유가 되는 경우는 드문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일종의 행운일 수도. 이렇게까지 용어를 공부할 줄은 몰랐는지 약간은 놀라기까지 한 것 같았다.

  본격적인 통역이 시작되었다. 사전에 대화를 나눈 덕에 미팅의 핵심을 짚을 수 있었다. 통역이 모두 끝나고 좋은 피드백도 받았다. 칭찬은 원래 기분 좋은 것이지만, 이날 정말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의뢰인과 소통이 잘 되었던 부분이다. 정말 한 팀으로 미팅에 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의 통역에도 조금 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통역 전 충분한 대화와 유대 형성이었다.

  통역 전에 자리에 앉다가 테이블에 무릎을 (아주) 세게 부딪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정말 검붉은 보라색 멍이 크게 들어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오늘 내가 할 바를 제대로 하고 집에 온 기분이었다. 프리랜서 본격 시작 1년 차에게 지난 아홉 번의 시행착오를 만회해준 소중한 한 번의 성공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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