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통역사가 커버해야 하는 역할 범위가 어디까지일까, 누구의 편일까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의 소통을 돕는 사람인 건 맞지만, 이 ‘소통’이라는 것이 참 애매하다. 그냥 A라는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B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 같은데, 망설여질 때가 더러 있다.
양쪽에서 각각 통역사를 대동할 때는 그 범위가 조금 눈에 보인다. 날 고용한 측의 말을 전달하면 된다. 상대방의 반응이나 대답이 어떻든 나는 나를 고용한 측의 입장에서 전달을 하면 된다.
문제는 내가 제3자의 입장일 때. 어떻게 보면 정말 제3자인 만큼 별다른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말을 옮기면 될 것 같은데, 통역사도 사람인지라 그게 어려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한 측이 너무 무례하거나 감정싸움이 될 수 있는 발언을 할 때. 자신이 하는 말은 어차피 나를 거쳐 상대방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니 통역사인 나에게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며 “아, 이건 통역 안 하셔도 됩니다”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통역 안 한다. 그 정도 눈치는 있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상대방이 알았으면 좋겠는지 통역을 해달라고 할 때도 있다. 정말 난감하다. 그 말을 통역하면 상대방이 감정 상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이걸 정말 전달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법정 통역이나 범죄자 수사 통역 같은 것은 말실수 하나도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해야 하니 약간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비즈니스 회의에서는 전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경우가 많다.
중간에 낀 내가 불편해서 대개는 조금 완화해서 전달을 하거나 에둘러 전할 때가 있는데, 솔직히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내가 감히 가운데서 어투를 더 부드럽게 또는 더 강하게 해도 되는 건지...
“그냥 들은 대로 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논쟁이나 작은 말씨름으로 이어질 경우 통역사를 탓할 때가 있다. “통역(이럴 때는 통역사라고도 안 한다)이 잘못 전달한 거 아니야?”, “통역 제대로 된 것 맞아요?”
정말 통역이 잘못된 경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중간에 있는 통역사의 탓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렇게 통역사가 누구의 편도 아닌 상황에서 통역사는 어디까지 관여를 해야 하는지(상대방이 기분 나쁠 것이 예상될 때 이를 고려할 것인가) 아직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