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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Dec 09. 2020

재택 아닌 재택 통역

  오랜만에 재택으로 통역을 했다. 의뢰를 받은 후부터 당일까지 계속 걱정이 되었던 것이 우리 집 고양이 천둥. 화장실 문만 닫아도 문 앞에서 우는지라 통역하는 동안 작업실 방 문을 닫으면 밖에서 계속 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낮에 오래 자는 편이고 조금 울다가 그칠지 모르니 해보자 싶었다.

  당일 아침에 책상 세팅을 마치고 천둥이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방 문을 닫았는데 역시나 문을 긁고 앞에서 울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문을 닫았으니 소리는 안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통역 시작 전에 업체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어디서 고양이 소리 나지 않아요?” 하시는 것. 이 소리가 다 들어가는 것을 알고는 “아 저희 집 고양이가 방 문을 닫았더니 우네요. 잠시만요.” 하고는 일단 방 문을 열었다.

  다행인 것은 본격 통역이 시작되고 난 후에는 천둥이 잠이 들어 일단 오전 통역이 무사히 지나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오후까지 하는 것은 무리였다. 언제 깨서 책상 위에 뛰어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남편네 스튜디오가 생각나서 혹시 오늘 예약이 없는 룸이 있는지 물었다. 하나 비는 곳이 있다고 해서 오전 통역 끝나자마자 급히 준비하고 점심시간을 틈타 스튜디오로 향했다.

  세팅하고 남편과 급히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오후 통역 시작. 남편이 간식도 가져다주고 일단 조용해서 무사히 통역을 마쳤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 통역이라 오늘은 아예 아침부터 남편과 함께 출근을 했다. 오늘 역시 비는 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막히는 출근길이었지만 같이 라디오 들으며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어제처럼 세팅을 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편했다. 집에 두고 온 천둥이 생각이 나긴 했지만 접종비와 사료비를 벌기 위함이라 생각하고 집중.:)

  점심시간에 되어 어제처럼 남편과 밥을 먹었다. 매일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었냐고 물으면 배달해주는 급식 같은 것이 있어서 그걸 시켜 먹는다고 했는데, 오늘 나도 맛을 보게 되었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매일 부실한 점심을 먹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는데 어제오늘 이틀 먹어보니 너무 맛있는 것이 아닌가. 집에서 대충 먹는 내 점심보다 훨씬 나았다. 맛있게 먹어치우고는 스튜디오 앞 산책을 하고 다시 들어와서 오후 통역에 임했다.

  통역이 모두 끝나고 또 함께 퇴근했다. 역시 막히는 길이지만, 역시 라디오 들으며 오늘 있었던 일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집. 그리고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니 중문을 열기 전부터 뛰어나와 반기는 천둥. 미안하고 고마웠다. 짐 내려놓고 손 씻고 하루 종일 놀아주지 못한 것까지 열심히 놀아주었다.

  남편과 한 장소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것이 뭔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든든한 면도 있고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제오늘 이틀뿐이기 때문이겠지...? 매일 같이 있으면 아마 싸울 일이 널렸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오늘. (ㅎㅎ)

  어쨌든 어제, 오늘의 통역도 무사히 지나갔다. 앞으로는 재택 통역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것 같다.ㅠㅠ 왜 이 집사가 갑자기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않는지 모르는 천둥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일 것. 지금 보다 조금 더 어른 고양이가 되면 눈치껏 이해를 해 주려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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