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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May 23. 2020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언프리랜서 3개월 차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물론 예상치 못한 코로나라는 변수 때문에 그 시작이 좀 더 어려운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내 할 일을 찾고 또 하고 있다.

  고작 3개월 됐는데 벌써 먼가 감회라는 것이 생기다니... 회사 다닐 때는 프리랜서가 부러웠는데, 프리랜서가 되니 회사에 다니고 싶...지는 않다. ^^; 그렇다고 프리랜서가 또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챙겨야 할 것,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어려움도 있다. 프리하지만 프리하지 않은 나의 프리랜서 생활 3개월은 그랬다.


1. 프리하지만 프리하지 않은 근무 시간

  그렇다. 프리랜서니까 내 일이 있을 때 일하고 일이 없을 땐 쉰다. 현재 정세상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통역은 거의 수요가 없다시피 한 상태이고 그나마 번역은 조금 낫다. 일이 없을 때는 근무 시간이 프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일이 많을 때.

  이제서 과거 남편이 프리랜서이던 시절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연애하고 결혼 후 1년 정도까지 남편은 프리랜서였다. 신혼여행 갔을 때 남편은 계속 메일을 확인하고 중간중간 노트북을 켜서 일을 하거나, 일을 아는 사람에게 맡겨 이번 건은 대신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신혼여행 와서까지 그래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 이해가 간다. 한 번의 거절로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걱정. 지금 내가 그렇다. 일단 들어오는 의뢰는 웬만하면 받고 당장 하루 종일 해서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니어도 지금 미리미리 해 놓아야 언제 번역 의뢰가 와도 바로 착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여유 없이 계속 번역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근무 시간이 하루에 12시간도 넘을 때가 많고 삶의 균형 따위 잊은 지 오래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 상황에 일이 있는 게 어딘가 싶어서 안심되지만, 내가 생각하던 프리랜서의 삶이 평일, 주말 없이 정말 번역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해서 정말 오래 할 수 있을까 싶어 최근에는 적당히 하고 요가도 하고 나름의 근무 시간을 정해 보려고 한다. 아직은 들어오는 일을 소화하기에 급급하긴 하지만...


2. 프리하지만 프리하지 않은 수입

  수입은 액수를 생각하면 프리한데(늘었다, 줄었다^^;) 혼자 정산, 입금 챙기는 것 생각하니 프리하지 않기도 하다. 모든 에이전시가 의뢰를 줄 때 PO를 발행해주고 정해진 입금일에 입금해주면 편하겠지만, 일을 의뢰하는 곳이 다 그렇지는 않다. 영세해서 체계가 없기도 하고, 개인이 맡겨주기도 하고, 다양한 루트가 있다 보니 이번 달에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얼마인지, 언제 받는지 등을 기록해서 확인하는 일을 해야 한다. 너무 늦어지면 왜 늦어지는지 언제쯤 가능한지 물어보는 일, 껄끄럽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안 챙기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매달 1일부터 마지막 날까지 입금된 것으로 한 달 수입을 계산하기 때문에, ‘아 이건 다음 달에 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번 달에 받아버리면(?!) 다음 달에는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조삼모사 같은 부담감이 생겨서랄까...^^; 어쨌든 수입 역시 프리하지만 프리하지 않은 부분.


결국 취소된 올해 여름 JLPT...

3. 프리하지만 프리하지 않은 마음

 일단 월요병이 없다. 지금까지 개그콘서트가 일요일 저녁 9시에 방영됐다면 개그콘서트 마지막 엔딩 곡을 들어도 슬프지 않았을 것 같다. 월요일도 그저 언제나와 같은 요일이다. 대신 항상 제자리에 있을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있다. 일하는 것과 별개로 학교에 다닐 때는 느리지만 뭔가 향상되어가는 느낌이 있는데, 졸업하고 일만 하다 보니 아는 것만 써먹고 밑천이 바닥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기 계발 차원에서 올해 여름에 만료되는 JLPT 시험을 보려고 접수하고 책도 사고 하루에 적어도 30분은 일본어 공부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실천한 지 삼일째 되는 날 코로나로 시험이 최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목표를 정해야 한다. 사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중국어 공부를 해야 한다. 순수한 언어 공부를 해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하루 30분이라도 일본어 대신 중국어 공부를 해야겠다.


  전반적으로 만족하며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다. 상황상 재택으로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부담이 덜한 것 같기도 하지만, 통대 입시 시절에 항상 바라 왔던 작업 환경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한 단어를 계속 파고들거나 더 나은 대응어를 찾고 더 부드러운 문맥을 생각하는 일, 매번 다양한 분야를 접하기 때문에 번역하면서 ‘아 이런 용어가 있어?’ 하며 얕게나마 한 분야를 배워나가는 일, 이런 모든 것이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꿈을 이룬 것 같기도 하다. 대신 일도 중요하지만 언제 갑자기 해야 할지 모를 통역을 위해 언어 공부를 하자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한다. 언제 도태될지 모르고 어쩌다 기회를 잃게 될지 모르는,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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