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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Aug 01. 2020

버리기 장인과 수집 장인의 동거

 우리 집엔 수집 장인과 버리기 장인이 같이 산다. 수집 장인은 남편, 버리기 장인은 나.

 기본적으로 남편은 자기 손에 들어온 물건은 버리지 않는다. 계산하고 받은 영수증도 일단은 가지고 있는다. 그러다가 내가 보다 못해 찢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영수증조차도 이러니 자기 돈 주고 사거나 돈 주고 사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다. 그래서 남편 작업방은 언제나 짐이 그득그득.

 나는 틈만 나면 버릴 것이 없나 살펴보는 타입이다. 물론 가끔 자리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싫어서 너무 앞뒤 생각 안 하고 버려버리는 바람에 아, 버리지 말걸... 하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후회도 잠깐이다. 대개는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가끔 날씨가 좋아 크게 청소를 하는 날은 그동안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들 중에도 큰 맘먹고 버린다.

 이렇게 아주 다른 두 사람이 살다 보니 버리네 마네 하는 일로 실랑이할 때가 종종 있다. “아 언젠가는 쓴다니까!” “몇 년 동안 이게 있는 줄도 몰랐잖아!” 결국은 버리지 않고 두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오빠가 잊은 것 같을 때 몰래 버린 적도 있다(미안). 하지만 여태까지 버린 줄도 모르는 걸 보니 크게 쓸모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조건 버린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남편이 고집부려서 버리지 않은 페인트 붓을 결국 필요해서 쓰게 된 날이 있었다. 그리고 남편도 무조건 가지고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남편 출근하고 내가 청소하며 정말 버려도 되는 것들 버리고 빈 공간을 만들어 두었더니 이런 공간이 생겼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살다 보니 나도 약간은 ‘이거 약간 필요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서 병적으로 버리는 일은 줄어들었고 남편도 내가 너무 쌓아두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서 영수증 정도는 그때그때 버리고 적어도 무언가를 쌓아둘 때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지만, 적응은 하는 것 같다. 보다 조화롭게 화목하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서로 조금씩 적응해가는 거다. 반반 훠궈가 점점 끓어 넘쳐 마지막엔 양쪽 다 섞인 맛이 되듯이(아 비유가 너무 중문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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