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풍부한 세상에 살고 있어 굳이 말복을 챙겨가며 특별히 보양식을 먹지 않아도 이미 영양 과잉 상태이겠지만, 정서적으로 말복을 챙겨야 마음이 약간 편해지는 것 같다. 말복이 지나도 한동안 덥긴 하지만 그 더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날이다. 올해는 이상하게 말복부터 더위가 시작된 것 같지만...
올해도 삼계탕 한 그릇이 먹고 싶어 졌다. 마침 낮에 땡볕 아래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다녀오느라 꽤 힘들었다. 하루 늦은 오늘, 옆 동네에 항상 사람이 많은 꽤 큰 규모의 삼계탕집에 갔다. 작년에는 일요일 아침 일찍 가 겨우 웨이팅을 면하고 일찍 삼계탕을 먹었다. 올해도 먹을 사람들은 다 먹었을 것 같은 시간, 저녁 8시가 다 되어 가니 그나마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었다.
뽀오얀 국물에 통통한 닭 한 마리. 크지 않지만 탱글한 살결의 닭 한 마리. 어렸을 땐(이라고 하지만, 20대까지도) 삼계탕 국물을 무슨 맛으로 먹나, 중국인들이 한국 음식 중에 삼계탕을 가장 좋아한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싶을 정도로 무슨 맛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작년부터 던가, 그 담백하고 약간 걸쭉하고 고소한 국물이 그렇게 좋다.
복날의 삼계탕집은 주문하고 5분이면 음식이 상에 오른다. 대충 큰 뼈를 발라내고 가슴살부터 챱챱. 맞은편 테이블에 아기도 엄마가 발라주는 고기와 찹쌀죽을 맛있게 받아먹고 있었다. 먹다가 주위 테이블을 둘러보니 다들 열심히 자기 뚝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복날에 삼계탕집에 가는 것이 가장 멍청한 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적대고 정신없어도 그 날만 느낄 수 있는 그 분위기에 남들과 같은 기분 느끼며 챙겨 먹어보는 것도 나름 사는 재미 아닌가. 덜 붐비는 시간대에 가서 먹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럴 때 괜히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정말 몸에 기운이 나는 것 같기도 하는 것 같다. 올해도 이렇게 삼계탕 한 그릇을 챙겨 먹고, 있던 힘에 힘을 더 보태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더위(와 코로나)를 잘 넘길 기운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