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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Sep 14. 2020

모르지만 아는 사람

 토요일 밤에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엇!’하고 멈췄다. 10년도 더 된 드라마 ‘궁’이 하고 있었다. 옛날 드라마를 다시 해주는 채널이라 가끔 요즘은 뭘 해주나 보는데, ‘궁’을 해주고 있었다니...

 드라마나 음악이나 연상되는 시기나 사건, 또는 사람이 있는데, 드라마 ‘궁’을 보면 난 톈진에서 유학하던 때가 떠오른다. 티비에서 방영해준 것은 유학 가기 전인 2006년이었지만, 중국 유학을 가서 개강하기 전에 룸메이트들과 무료함을 달래며 본 첫 DVD(6위안짜리 불법복제;;;)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는 신기한 일이 있었다. 한 5년 전에 남편과 톈진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여행기를 블로그에 써두었는데, 한참 전에 쓴 이 포스팅에 며칠 전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자신도 톈진에서 유학을 한 적이 있는데 내 글을 보니 추억이 떠오르고 다시 가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는 내용. 그 댓글에 답글을 쓰고 누군지 궁금해서 댓글 단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블로그에 글은 없었는데 블로그 이름이 본인 실명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름을 본 순간 ‘어?’ 하고 갑자기 스쳐가는 짧은 기억.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

 내가 유학할 당시 같이 공부한 언니 오빠들이 이야기하며 가끔 언급했던 이름이다. 자주 이야기하길래 그건 누구냐고 물었더니 작년에 유학하다가 돌아간 친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이걸 기억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그때 그 이름이 그분의 블로그에 쓰여있었다. 흔한 이름은 아니어서 혹시 그분인가 싶었다. 하지만 나랑 직접 아는 사이도 아니고,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것도 없었다.

 그런데 계속 궁금했다. 정말 그 사람이 맞을까 하는 생각과 오랜만에 떠오르는 톈진 유학 시절. 결국 염치를 무릅쓰고 비밀 댓글로 물었다. 혹시 OO, ** 이런 사람들을 아냐며 같이 유학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댔다. 내가 유학할 때 같이 공부하던 언니 오빠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들어본 이름 같다고, 혹시 아니라면 죄송하다고.

 대여섯 시간 후 댓글이 달렸다. 다 아는 사람들 이름이라고.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자세한 경위를 이야기했다. 나와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지만 이래저래 해서 성함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쯤 설명하니 약간 현타(?!)가 왔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약간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당시에 무슨 흉을 보고 그러다가 듣게 된 이름은 당연히 아니지만...

 다행히 그분은 반갑게 댓글을 읽어주셨고, 나와 지금도 연락하고 있는 톈진 유학 동기 언니의 안부를 물어 잘 지낸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모처럼 톈진 유학 시절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고... 나도 그랬다. 후회되는 것도 많은 톈진 유학이었지만, 그때 그곳 톈진에서 유학생으로서만 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도 많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추억 조각들. 밤새 닭꼬치 양꼬치 사 먹고 신나게 볼링치고 틈만 나면 베이징에 놀러 가던 추억들. 공부한 추억이 별로 없는 것이 톈진 유학에서의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이다.

 댓글을 달아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분은 기회 되면 또 보자고 했다. 물론 랜선상에서. 내가 쓴 톈진 여행기를 다시 한번 읽었다. 상하이 유학 때와는 달리, 톈진 유학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릿한 게 있다. 너무 예전이라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던 참에 드라마 ‘궁’을 보니 너무 추억 속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좀 해어 나오고 싶어 질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지난 주말이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시간 여행하다 온 기분. 건너 건너 멀리 인연이 닿을 뻔한 어떤 사람 덕분에 그 시절이 생생히 떠올랐다. 이젠 그때에 대한 후회와 배움과 행복으로 오늘을 살아야지. 다시는 같은 후회하지 않고 좀 더 배우고 좀 더 행복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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