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다. 쓴다. 보낸다. 걷는다. 뛴다. 온다. 씻는다. 돌린다. 쓴다. 읽는다. 나간다. 본다. 온다. 봐준다. 만든다. 나간다. 산다. 온다. 만든다. 쓴다. 치운다. 차린다. 먹는다. 치운다. 쉰다. 잔다.
일과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감정은 수만 가지라 어떤 날은 뭘 해도 의욕적이 되고, 어떤 날은 괜히 심드렁하다. 보편적으로 열거되는 하루의 동사 앞에 여러 꾸밈이 들고 날고 해서 그런 것이겠지. 뇌 파먹는 아메바도 아니고 그저 그런가 보다, 마음에 충실하면 될 일.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도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라고 방탄 소년들이 그랬잖은가.
정답은 없을지도 몰라
어쩜 이것도 답은 아닌 거야
그저 날 사랑하는 일조차
누구의 허락이 필요했던 거야
난 지금도 나를 또 찾고 있어
나의 사랑으로 가는 길
가장 필요한 나다운 일
지금 날 위한 행보는
바로 날 위한 행동
날 위한 태도
그게 날 위한 행복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은율이는 자꾸만 연주하는 걸 들려주고 싶어 한다. 피아노는 열 살 생일 때 사주기로 했으니 멜로디언으로 바람을 훅훅 불어넣으면서. 엄마도 해 보라며 선생님 시늉도 한다. 솔직히 내가 봤을 땐, 리듬 있는 삶 살라고 이름도 비스무리 지어줬지만 그다지 리듬감은 없어 뵌다. 박수를 치기엔 반주가 좀... 영 시원치 못한 거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의기양양, 그러면서 말한다. 엄마가 내가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하는 걸 봐야 돼. 그래야 멋져 보이거든.
커서 건물을 산단다. 커피숍도 있어야 한댔고 자기가 만든 굿즈 상점도 차릴 거란다. 본캐는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셰프라며 레스토랑은 삼 층 정도 크게 한단다. 희망 회로 돌리면서 그거 다 운영하려면 너무 바쁘겠다 걱정을 하길래, 임대의 개념을 알려줬다. 장소를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아도 되지만, 대표는 은율이가 하고 전문가를 직원으로 쓰면서 월급을 주면 된다고도 해줬다. 건물 이름은 리듬송으로 한단다. 주말에 하루는 셰프인 너가 홀로 나와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거야 이벤트로. 어때?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호들갑이다. 뭐라도 돼라 생각했는데 건물주가 꿈이라니. 혹하네?
사실 마흔 다섯 짤인 나도 꿈이 있다. 무기력이 나를 찾아도, 멍이 나를 불러도 꿈을 잊지는 않는다.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니까 무기력에 파묻히더라도 인정 밖에 더하겠나. 그들이 한바탕 휩쓸고 가면 의욕도 찾아올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