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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Apr 22. 2021

생산적인 사람

엄마도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

- 엄마를 만들어 줄게


자주 딸에게 모델이 되고 있다. 그림이 됐든 만들기가 됐든 내가 주인공인 경우 그녀는, 절대 보면 안 된다며 복닥복닥 숨어하다가 짜잔 보여주는 편인데 이번에 만들어 준 나를 내밀었을 때는 오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뭐 속눈썹이 저리 길 리는 없지만서도, 일상의 나와 꽤 닮아 보였기 때문에. 물론 만화책은 설정된 거인데 방긋 웃고 있는 게 영락없는 한량 같아 더욱 마음에 든다.


어떨 땐 누워서 좀 쉬고 싶을 때 은율에게 엄마 화장 좀 해 줘, 부탁한다. 그러면 아이는 별 거 없는 화장품 파우치를 가져와 비비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팩트를 찹찹 두드린다. 틱톡의 언니들이 하는 거 봤다며 펜슬로 눈썹을 그리고 지울 때는 벅벅 박박 해서 참으로 아프고, 립스틱을 눈두덩과 볼에 쳐발쳐발 해서 문지르는 이변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아서 눈 감고 있다.


독립은 예상보다 빨리 오는 듯하다. 집에 있을 땐 영락없는 재간둥이 딸이지만, 밖에서는 꽤 씩씩한 어린이로 자라고 있다. 하교 후 데리러 가는 거는 이제 그만두었다. 아이는 '지금 학교 끝났다리우리우' 같은 톡을 날리면서 친구의 손을 잡고 학교 앞의 피아노 학원에 가고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나 한 시간쯤 놀다 집에 온다. 하루 종일 복닥이던 아이와의 생활이 반나절 가량 줄어든 셈이다. 


학교 가서 수업 듣는 일이 쉽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이는 아이대로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매일이 기특하다. 남편은 뭐 말해 뭐해. 나땜에 출퇴근 거리가 멀어져 환장의 환승역을 거쳐야만 하는 남편의 노고는 내, 진심 인정하는 바다. 고마워. 맨날 아빠는 배 빵빵한 돼지야,라고 놀리는 아이도 사실은 아빠를 몹시 좋아하는 거 다 안다. 어제 축구 수업하느라고 아빠 들어올 때 점프를 못한 아이는 화장실에서 외쳤다.


- 아빠 내가 샤워 다하고 안아줄게








그건 그거고, 나도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전업 주부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 그건 그것대로 놔두고 다른 뉘앙스로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혼자 즐기고 싶지는 않아졌다. 그러기엔 따분하고 지겹다. 내가 좋으면 그뿐이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열반의 경지에 이른 자만 누릴 수 있는 영역 같다. 지나와 보니 그렇다. 그저 썼던 행위와 써서 돈을 버는 행위의 그 중간 어디쯤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는 내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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