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주기 쓰리콤보
마중을 나가려고 하는 찰나 놀이터에서 놀고 가면 안 되겠냐고 전화가 왔다. 비 많이 와서 다 젖었을 텐데,라고 했지만 아아앙 제바알. 그럼 조금만 놀고 올 때 연락 해. 그러나 3분 후 다시 전화해서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며 엄마가 놀아달란다. 이번에는 내가 아아앙 제바알,하고 애원했는데 그녀는 한 술 더 떠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입에 따발총을 달았다. 알았다 알았어.
그네를 서서 타다가 앉아서 타기도 할 만큼 스킬이 좋아진 것도 흐뭇할 일이지만 그보다, 서서 탈 때 신발을 벗고 타는 어린이란 사실에 더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는 차이를 전혀 몰랐다가 옆에 고학년 언니가 신발 신은 채 타서 아... 하게 되었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고 했는데 여기에도 신개념이 도입되었다. 마네킹 꽃이 피었습니다, 하면 술래가 와서 자세를 멋대로 바꿔 놓는다. 창문 꽃이 피었습니다, 하면 또 다가와서 똑똑 노크를 하고는 난데없이 챌린지를 한다. 고양이 vs 강아지 하나 둘 셋! 술래와 통하면 일보 전진할 수 있다. 처음엔 은율이 술래, 그다음 판엔 강제적으로 내가 술래가 되었는데 나를 친 후 이 동네 끝까지 뛰어가는 통에 체력이 바닥나 버렸다. 엄마 죽일 셈이냐.
빗물에 고인 모래를 손으로 만진다. 으윽 제발. 나무토막을 주워 와서 젖은 모래를 그 사이에 넣고는 마카롱이란다. 이번에는 투명한 컵의 뚜껑을 주워 와서 모래성을 만들었다. 주변 장식하게 돌 좀 가져오라 분부해서 졸지에 신하가 된 나는 돌 수집하러 돌아다녔다. 딸 친구들아 어디 있니. 내 목소리 들리니.
집으로 오는 길에는 노랑 강정에 들러 하나씩 컵 포장을 했다. 은율이는 아무 양념 없는 강정과 떡을, 나는 같은 것에 매콤 달콤 양념을 선택했다. 걸어오는 길에 아, 하나만 먹고 싶다, 하나만 먹고 싶다 침을 질질 흘리길래 떡 하나 쏙 빼서 입에 넣어 주었다. 야무지게도 먹는다. 어깨에는 은율의 가방, 손에는 닭강정 보따리가 들렸지만 다른 손으로는 딸의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걸었다. 별 거 없는데도 신이 났다.
남편이 삼계탕 먹고 싶다 해서 밀키트로 사다 놨었다. 그리고 아마도 주말에 먹을 것 같아 우삼겹도 샀었다. 퇴근한 남편이 전화해 오늘은 삼계탕인가? 물었다.
아니 우삼겹. 은율이랑 나랑 아까 닭강정 먹었어.
난 닭강정 안 먹었는데?
응. 그러니까 우삼겹.
저기요. 저기요?
고기 잘 굽는 남편이 있어 평화로운 금요일의 저녁. 셋이 앉기에 비좁고 낡기도 했던 소파를 버리고 새로 구입했다. 사길 잘했지? 응 잘했다. 배부르고 등 따시니 소유의 찐 행복이 마구 피어올랐다. 이렇게 널널하게 앉을 수 있다니요! 한바탕 환기를 시켰더니 꽤 쌀쌀해진 밤. 은율이 방에서 가져온 이불을 소파 위에서 옹기종기 노나 덮고는 우린 각자의 핸드폰에 집중했다. 공간은 공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