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만 논다 해 놓고 놀이터 두 시간째. 덥긴 또 오지게 더워서 그늘 아래 벤치가 아니었다면 훨씬 지겨웠을 것이다. 은율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이미 머리맡은 흠뻑 젖었는데도 집으로 가는 길, 기어코 구름사다리 한 번만 더 하고 간단다. 이제는 왕복도 가능할 만큼 팔 힘이 쎄진... 거, 그래 알았으니까 집에 좀 가자고. 수다도 끝없다. 놀이터에서 친구 S랑, 처음 만난 어떤 동생이랑 줄넘기를 하고 얼음땡도 했는데, 동생은 자기보다 한 살 어리니까 서툴러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뭐 그랬다는 이야기.
수요일은 축구하는 날. 유니폼이 매우 커서 티셔츠라기보다는 하의실종에 가까운데, 그래도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 보면 꽤 큰 애들 같다. 픽업 차가 오기 전 아이들은 놀이터로 직행했고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알은 체를 했다. 은율이가 아까 얘기 안 하더냐면서 T의 엄마가 물어왔다. 은율이와 같이 놀았다던 그 동생의 엄마였다. 굉장히 친절하게 알려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서, 은율이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했다. 자기 딸이 은율이 언니한테 반했다면서. 애가 저 혼자라 동생 돌 봐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둘러댔지만 마음 깊이 뿌듯했다. 그런 아이일 거라 짐작하는 것과 타인에게 직접 듣는 거는 다른 차원이니까.
애를 보내 놓고 마트를 갔는데 운이 좋게도, 캔맥주 테라가 세일이랬다. 오호. 안 그래도 사려 했는데 막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시네? 넌지시 다가가 딜을 했다. 저 이거 일곱 박스 살 건데 뭐 없나요. (배시시) 더 할인은 안 되고 잠깐만요 증정품 챙겨 드릴게. 얏호! 감자칩 3개 주웠다.
수업 마치려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이디야에 들러 책을 읽기로 버얼써부터 생각해 뒀기 때문에 걸음이 빨랐다. 아이스커피 시키고 책 읽는데 와, 눈에 막 쏙쏙 꽂히네. 저 짝에 청춘 남녀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데도 거슬리지 않았다. 울트라 소머즈의 귀를 가졌는데도 말이다. 진동이 울린다. 발신자가 남편인 걸 보니 여섯 시다. 애는 축구 갔고 난 커피숍에서 시간 때우는 중이라 하고선 한마디 더 했다. 빨리 끊어, 나 지금 일분일초가 아까워.
집에 가는 길에 삼겹살 한 근을 샀다. 요즘의 저녁 메뉴는 은율이가 고른 걸로 낙찰이다. 축구를 마친 것보다 친구들과 같이 있다는 사실에, 좀처럼 흥분감을 내려놓지 못하는 애를 어찌어찌 설득해 집으로 왔다. 삼겹살이 좋은 이유는 딱히 다른 준비가 필요치 않아서다. 정육점에서 얻은 파채를 양념하고 야채만 좀 챙겼다.
마침 들어온 남편이 씻은 후 상 차리는 데 일조했다. 다 된 밥에 몸만 오시면 되는 딸은 귀에 헤드폰을 꽂고 유튜브를 보았다. 우리도 유튜브를 보니까 밥 먹을 땐 밥만, 하고 외칠 수가 없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실실 웃는 딸의 옆모습을 훔쳐보다가 오늘 있었던 아이의 생활을 남편에게 말했다. 말을 하는 나도 듣는 그에게도, 뿌듯한 기운이 한껏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