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중학교 2학년 그니까 15살 때까지 엄마의 가슴을 만지며 잤었다. 엄마는 어떨 때는 아 쫌 젖 좀 그만 만져! 라며 버럭 했지만 내 손을 치우지는 않았다. 엄마는 뚱뚱해서 여기저기가 푹신푹신했는데 특히 가슴의 살은 유들유들한 촉감이 아주 짱이었다. 게다가 뽈록 튀어나온 유두는 갖고 놀기가 아주 좋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때 그 시절(무슨 60년대 생각하면 곤란하다)엔 엄마 젖 밖에 먹을 게 없었고 또 오래 멕여서 오빠나 나나 애기 때부터 많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 했다. 오빠는 아마도 두 살 터울인 나에게 장난감을 뺏긴 거겠지만서도, 여하튼 막내이자 엄마 껌딱지였던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유독 더 엄마의 가슴에 집착했다. 어쩌면 다 큰 애를 껴안고 자는 엄마도 내 손길로 인해 외로움을 이겨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느 날 엄마가 사촌오빠에게 우스개 소리로, 쟤는 아직도 젖 만지고 자는데 뭐,라고 놀렸을 때에야 나의 쪼물딱은 멈추었다. 열다섯 살 때 말이다.
나의 딸은 젖을 빨지 못했다. 아기가 잘 빨 수 있는 유두란 따로 있는 거인데 여하튼 내 유방은 그러질 못해서, 애가 힘들어했다. 그래도 모유는 먹이고 싶어서 나는 매일 유축을 했다. 회사 사무실 쪽방에 틀어박혀 빠른 시간 내에 유축하고 나오려고 손바닥으로 힘을 가했던 날들이 수개월 이어졌는데,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딸은 내 젖을 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발가락이 닮았다, 는 소설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홉 살인 지금 그녀는 시시때때로 나의 가슴을 공략하는 중이다. 특히 장난을 칠 때, 엄마를 이겨 먹고 싶은 아이는 가슴을 움켜쥐려 하는데, 그때마다 아주 간지러워 죽겠다. 목 간지러움을 못 견뎌하는 딸에게 내 필살기가 한 방이듯 딸의 필살기는 내 가슴을 만지는 데 있다.
어떨 땐 잠자려고 누워 있을 때에도 슬금슬금 손가락이 기어 온다. 나는 나의 엄마처럼 아 쫌 간지럽다니까! 버럭 하면서, 또 내 엄마와는 달리 딸의 손을 치운다. 엄마는 이 귀찮은 손길을 대체 어찌 참았을까 싶다. 호기심이 많은 나의 딸은 이렇게도 묻는다. 엄마 어떻게 하면 가슴이 그렇게 커지는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