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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Sep 13. 2021

우물 안 개구리

딸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우리 반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잖아. 그래서 마음속으로 다른 애들 그림을 좀 무시하게 돼'라고. 쉬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구경을 한다 했고 선생님은 수업 시간 때 다른 애들과는 다른, 조금 난이도가 있는 교구를 준다고도 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그랬다. 그건 아주 솔직한 마음이지, 잘못된 건 아니야. 그런데 우물 안 개구리라고 속담이 있거든? 우물 속에만 사는 개구리는 자기가 제일인 줄 알고 으스대다가 어느 날 우물 밖으로 나와서 완전 깜짝 놀라. 밖의 세상은 우물보다 훠얼씬 넓잖아, 연못도 있고 강도 있고. 개구리는 그때 알게 돼. 아 나보다 대단한 것들이 훨씬 많구나 하고. 그러자 딸이 말했다. 

'나보다 더 잘 그리는 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걔가 어떻게 그리는지 물어보고 배울 수 있잖아.'




학교에서 배운 돌멩이에 그림 그리기, 유식한 말로 스톤아트를 또 하고 싶다길래 점심 나절에 작고 반질반질한 돌멩이를 주으러 단지 주변을 돌았다. 집에 온 아이는 주워 온 돌멩이를 말끔히 씻어 잽싸게 방으로 가져가서는 절대 보지 말라더니 한참 후, 거실 소파에 누워 있던 내 배 위로 돌멩이를 올려놓았다. 토토로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너무나 귀염 뽀짝 해서 나는 그걸 쥐고 딸이 부탁하지도 않았건만 상황극을 펼쳤다. 웃겨 죽겠다고 깔깔대던 딸은 일기에 '엄마가 좋아해 줘서 내 마음이 참 기쁘다.'라고 썼다.




반 친구 중에 소위 말썽을 많이 피우는 소년이 있다. 피해를 안 주면 또 모를까 애들에게 심한 욕을 서슴지 않고 공격적인 성향이기도 해서 엄마들은 쉬쉬하면서도 수군거렸다. 그 소년과 같이 축구를 하고도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있었던 어제 그 소년이, 같이 놀던 친구에게 욕을 하는 바람에 그 엄마가 몹시 흥분한 일이 있었다. 나중에 도착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를 포함한 엄마 몇은, 계속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내 아이를 비롯해 그 소년의 방향성을 생각했을 때도 안 좋지 않겠냐며 열변을 토했다. 문제는 한두 번이 아니라는 데 있었으니까.


저녁을 먹으며 넌지시 딸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어때? 주의 많이 받아? 친구들한테 막 욕하고 그런다며.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외였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 욕 하는 거 못 봤어. 그리고 나는 걔랑 친해지고 싶어.'


허억. 얘 좀 보게. 나는 놀라 말했다. 아니 걔가 친구 막 때릴라 하고 욕도 많이 한다던데. 엄마는 별로... 가까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딸이 이랬다. '아니, 하지 말라고 하면 되지. 다 피하면 그럼 걔는 누구랑 놀아.'


뜨끔. 진짜 우물 안 개구리는 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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