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교내 도서관 책 상태가 좋은 편이다. 다행히 안내문을 보니 방학 때도 개방을 한다길래 적극 활용해 보기로 했다. 한 번에 두 권만 빌릴 수 있어 화, 목에 가기로 일일 계획표를 짜고는 처음 나섰다. 가만있어도 땀이 좔좔 흐르는 불쾌지수 리얼 백 프로 정오 즈음에 말이다. 마침 또 후문이 굳게 닫혀 있어 꾸역꾸역 정문으로 가, 애를 들여보내고는 기다렸다. 딱히 앉을 곳도 변변치 않아 화단 귀퉁이에 쪼그려 덥다 더워. 삶아라 삶아, 를 연발하면서.
'엄마아' 늘어질 대로 늘어진 걸음걸이로 딸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엄마아아, 도서관 안 한대!' 그럼 그 책은 뭔데? '이거는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했다고 하나 빌려 주셨어.' 허얼. 분명히 도서관 개방한다고 안내문에 써 있었는데? '엄마가 잘못 봤나 보지.' 아니야 분명히 써 있었다니까. '그럼 애들이 왜 한 명도 없겠어!' 그건 방학이니까 시간이 안 맞을 수도 있는 거지. '도서관 선생님이 만약 개방하면 문자나 알리미로 연락했을 거라던데?' 주거니 받거니 땡볕 아래서 딸과 나는 한참을 옥신각신 했다. 한쪽은 왜 엄마를 믿지 못하냐로, 다른 한쪽은 그럼 선생님이 거짓말하겠냐며.
학교 근처에 도서관이 있긴 해서 기어코 그리로 또 갔다. 쑥 들어오는 에어컨 바람에 털렸던 체력이 좀 돌아오는 듯했다. 나는 한숨을 돌리며 구경했고 딸은 책을 뺐다 넣었다 고르느라 한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그녀가 내게 와 불쑥 한 권을 내밀며 말했다.
- 이거 엄마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
그게 사진의 <아홉살 마음 사전>이다. 이런 책은 또 어찌 찾았대. 그, 근데 왜땜에 엄마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거냐.
집에 돌아와, 빌려 온 책과 자갈치를 챙겨 우리는 안방으로 갔다. 에어컨을 켜고 침대 위에서 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으니 세상만사 내 발아래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단연, 딸이 권해 준 <아홉살 마음 사전>을 읽었다. 왼쪽 페이지엔 마음을 나타내는 동사와 그림이 실려 있고, 오른쪽엔 그런 마음이 드는 상황에 따른 문장이 세 가지로 소개되는 형식의 책이었다. 그림체가 귀엽고 짧은 글은 공감을 샀다.
와중에 '어이없어'라는 단어가 나왔길래 오늘의 해프닝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찍었다. 아참참, 집에 와서 방학 안내문을 확인한 결과 내 말이 맞았다. 정확히 개방한다고 쓰여 있었다. 딸에게 이바 이바, 하고 보여줬더니 도서관에 항의를 하란다. 뭘 그렇게까지 해, 그랬더니, '잘못을 이렇게 넘어가면 그 선생님은 영영 모르니까 고치 지를 못하지'라고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난 어쨌든 애와의 옥신각신에서 이겼다는 기쁨 하나로 만족하는, 귀찮은 어른이였다.
아빠가 발가락을 만지다가 귤을 까서 주면 찝찝하지 찝찝해. 딸과 나는 이 페이지를 보며 한참을 킥킥 웃었다. 오늘 나의 마음은 '개운해'로 마무리인데 딸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