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은 이미 주말부터 시작되었지만 아무래도 온라인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월요일이었던 어제가 출발점이다. 방학을 기다려온 아이라 일단 늘어지게 늦잠 자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웬걸 여덟 시가 되기 전에 제 발로 걸어 나왔다.
그래선지 방학이 무색하게 꽤 많은 것을 하루에 몰아했다. 아침에 모두 제자리 청소를 필두로, 기어코 침대에 누워 하드를 먹은 청개구리 녀석 때문에 매트를 포함해 이것저것 욱여넣어 세탁기를 돌렸다. 아침 식사는 분주한 날 대신해 딸이 모닝빵에 누텔라를 발라 우유와 함께 준비해 줬다. 그걸 먹으며 우린 여름방학 생활계획표를 짰다. 하루 한 가지 원씽을 지키는 일을 평소에도 하는 터라 새삼스러울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더 빡빡하게 짜지도 않았다. 적당히 게으르고 계획은 널널한 편이 애도 나에게도 좋으므로.
돌밥은 귀찮지만 해야만 하는 의무 중 하나다. 점심은 단무지와 오이와 스팸과 계란을 넣은 김밥을 딸과 나란히 딱 한 줄씩만 싸서 그녀는 물과, 나는 맥주 한 캔과 먹었다. 굵기는 자기 알통 만하고 밥알은 죄다 밖으로 튀어나왔던 솜씨는 언제 어디를 갔는지 이젠 꽤 그럴듯한 김밥을 만들어 내심 놀라기도 했다. 손끝이 야무져졌다.
오후엔 딸과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읽지는 않아도 엄마인 내가 블로그에 이러한 행위를 기록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만들다 말고 내가 잠깐만! 하면 손을 멈춰 주는 친절을 보인다. 동영상 아닌데 굳이 어떨 때는, 설명도 곁들인다. 자기가 크면 유명한 유튜버가 된다고 하니, 을마나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가 될런지 지켜봐야겠다. sns로 뜨는 게 그게 그르케 쉬운 게 아니다 너.
피아노 학원 데려다주러 밖에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이 형용할 수 없는 더위 무엇. 미쳤다리. 어쩐지 이 찜통 열기를 헤쳐 나가는 용사라는 생각에 태평한 척, 아이 손을 꼭 잡고 아무 얘기나 했다. 매미는 어째서 허물을 인도 턱에다 벗었을까 따위들 말이다. 애와 헤어지고 근처의 이디야로 향했다. 이건 집 밖을 나오기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챙겨간 책은 이슬아 작가의 <심신단련>이었는데 한 구절에서 띠용- 이건 찍어야만 했다.
비밀인데 사실 나는 거의 매일 잠깐씩 낮잠을 잔다. 여태까지 왜 비밀로 했느냐면 낮잠을 자고 싶어도 못 자는 사람이 세상에 많기 때문이다. 그게 나 때문은 아닐지라도 굳이 떠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고단한 사람들 앞에선 웃음소리를 낮춰야 한다. 내 작은 기쁨을 혼자 조용히 누리는 게 예의일 때도 있다.
위 문단에 공감하는 사람 손! 어떤 고단한 사람들 앞에선 지금 이 순간 커피숍에 앉아 한 템포 쉬는 내 모습이 얼마나 달게 느껴질까 생각했다. 종일 집콕해야만 하는 생활은 때때로 루즈하지만 그래 그건 빙산의 일각인 거다.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라면, 과연 나는 지금처럼 일상의 소소한 마력을 건질 수 있을까. 있어도 지금보단 덜 할 것이다. 그러니 그토록 바라던 자유 앞에 비겁한 핑계로 나와 아이 그리고 남편에게 화를 범하면 될까요 안 될까요.
아이를 만나 다시 집에 와, 샤워를 하면서 갑자기 딸과 나는 의기투합해 화장실 청소를 했다. 발단은 은율의 꼬질꼬질 샌들 때문이었는데 필 받은 그녀는 화장실용 슬리퍼를 분해까지 해서 꼼꼼히 닦았고, 나는 그 옆에서 물때 낀 바닥을 솔로 문질렀다. 둘 다 홀딱 벗고 말이다. 그리고 바닥을 닦으며 결심했다. 오늘부터 1일인 여름방학을 매일 기록해 봐야겠다고. 딱히 그럴싸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시간의 흐름이라도, 그래서 아무리 쥐어짜도 쓸 게 없을지라도 말이다. 딸이 말끔히 닦은 샌들을 건조대에 올려 두고 달력을 보며 셈 했다. 가만 보자. 개학 날까지 세면 30일. 딱 한 달이구나. 흐음 좋았어. 날짜도 딱 떨어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