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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Sep 12. 2021

환생한다 해도

매일매일 그리고 만들며 도삽질을 하는 딸의 작품 중 오늘 내 마음에 쏙 든 것은 저승사자라며 보여준 이 그림이다. 검은 한복에 갓을 쓴 핏기 제로의 <전설의 고향> 버전이 아니라서 격세지감을 느끼긴 했지만, 반은 천사 그리고 반은 악마로 표현한 자체가 매우 신선하면서도 묘했다.


딸은 사후세계가 있을 것 같댔다. 거기서 살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는데 똑같은 걸로 다시 태어난단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 모두는 과거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새롭게 산다 했다. 일테면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말이다. 나는 죽으면 그냥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아홉 살 딸은 어떤 계기와 영향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밤에는 2020 도쿄올림픽의 여자 배구 경기를 보고 심장이 터질 듯 쫄깃했다가, 승리의 기쁨을 서로 얼싸안고 콩당콩당 뛰며 표출하는 그녀들 모습에 눈물을 질질 흘렸다. 이 세상 태어나 하나의 것에 사력을 다하고 또 그만큼 빛을 발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인데, 그 멋진 걸 해내다니 존경스러웠다. 안 귀한 삶이 있겠냐만 빼어나다는 것에는 그만큼 노력이란 게 깃들어 있으니 우러러 볼 일이다.


오늘은 친정 아빠의 제사다. 딸의 그림이 운명인 듯 걸쳐진다. 딸의 말대로, 우리가 다시 이 모습 그대로 환생하여 다시 만난다 해도, 기억이란 것을 할 수 없다면 이별은 인간에게 늘 어려운 난관이자 고행일 것이다. 진부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지금 생,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로 여제들의 삶처럼 가슴 뛰는 순간을 많이 많이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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