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학원 가는 길에 딸과 같은 반 남자 사람 친구를 만났다.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사이였는데 딸이 대뜸 물었다. '넌 방학 때 몇 시에 일어났어?' 그러자 친구가 말하길 '나는 여섯 시 반. 늦게 일어나도 일곱 시쯤?' 허걱. 나 만큼이나 딸도 놀랐는지 '나는 아홉 시 정도에 일어나는데...'라고 매우 조심스럽게 읊조렸다. 친구와 헤어지고 다시 둘만 걸을 때 딸이 말했다. '엄마, S는 진짜 빨리 일어난다 엄청 부지런한가 봐.' 그러게. (괜찮아. 쟤는 쟤고 너는 너야.)
방학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딸은 딱히 없다고 답했다. 내 딴에는 여행에 제약을 받는 대신 함께 만들고 그리고 읽으면서 공감과 공유를 쌓는 일에 치중했다 생각했는데 그건 딸에게 그냥 일과였던 거다. 전처럼 수영장이나 캠핑을 가지 않아서 아쉬워했고 차일피일 미룬 탓에 계획했던 갯벌체험도 하지 못해서 몇 번인가 불만을 토로했다. 좋은 엄마는 함께 하는 엄마라고 여겨왔는데, 역시 마음가짐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다.
그러나 특별한 기억이 없다는 딸과 달리 나는 그녀가 한 달간의 시간 동안 부쩍 자람을 느낀다. 와중에 하나를 꼽자면 가스렌지에 불을 켜 계란 프라이를 하거나, 식빵을 잘게 잘라 버터를 넣고 굽는 등의 요리를 할 만큼 대범해졌다는 점이다. 좀 더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윤택한 사회적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특히 올여름은 덥기도 참 더웠는데 딸이 만들어주는 아이스라떼 덕분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청량감을 맛봤다. 전날 저녁 따뜻한 물에 인스턴트커피를 하나 녹여 얼음 트레이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날 꺼내 커피 조각으로 데코를 해서 내게 주었을 때는 쌍엄지를 넘어 진동이 일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재미가 동반된 형태로 구구단 외우기를 했다. 그건 방학 숙제이기도 했는데 여전히 팔칠은 오십육과 팔팔에 육십사는 헷갈려 하지만, 그런대로 9단까지 성공해 냈다. '우리 반에 어떤 애는 16단도 할 줄 안다?'고 하면서, 다들 수학 학원 다니는데 자긴 안 다녀도 괜찮을까 묻기도 했다. 괜찮아. 수업 때 안 배운 거니까. 학교에서 아직 가르쳐 주지 않는 건 너희들이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너무 많이 앞서가면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져. 그렇게 말하고 혹시나 물었다. 학원 다니고 싶어? 아니랬다.
대신, 좋아하고 잘 그리고도 싶은 그림은 배우고 싶다 해서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미술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두세 번 다녀오더니 너무 재미있다며 매일 가고 싶대서 주 1회를 2회로 바꿔 주었다. 딸의 배움에 즐거움이 동반된 듯 해 학원비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만들어온 작품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기특했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생은 제각각 다르니까 같은 속도로 달릴 거라는 기대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게 지론이다. 너는 너만의 성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