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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Oct 14. 2020

서른여섯, 나도 엄마가 되었다

늦깎이 초보 엄마의 요절복통 육아일기 <안녕 밤쭈야>

내 나이 서른여섯, 엄마가 되었다.


평온함이 지속될 것 같던 일상이 뒤바뀌었고, 어질러진 방이 알려주듯 매일매일이 전쟁통이다. 아기를 낳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현실 육아는 조리원 생활이 얼마나 단꿈이었는지를 말해줬다. 머릿속은 뒤섞여있고 안 까먹어야지 하는 것들은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인 일상이 시작되었다. 내 나이 서른여섯, 늦깎이 초보 엄마 대열에 들어선지도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멘붕 속에서 조금은 요령이 생겼고, 매일매일 울면서도 아기 사진을 남기느라 정신없다.


사실 아기가 잘 때 같이 자야 회복할 수 있는데, 잠은 안 오고 글이 너무 쓰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써보는 나의 생애 첫 육아일기!




임신 5주 차, 너를 확인하다


나의 악동 밤쭈의 탄생은 코로나와 함께 시작되었다. 결혼 4년 만에 기적처럼 다가와준 아기천사였지만 코로나라는 전 세계 최악의 바이러스도 함께였다. 그리고... 딱 1주일...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1주일 만에 공포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이 입덧은 밤쭈를 낳기 전날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냄새에 둔감하던 내가 창문을 열어놓고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냄새가 뭔지 알아맞힐 정도로 예민해졌으니까 말 다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여보~ 나 이거 먹고 싶어~ 저거 먹고 싶어~"라는 로망은 없었다. 먹고 싶은 건 없었고 지옥 같은 입덧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동그란 얼음이 담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버티기 급급했을 뿐. 12주의 기적이라는 바람도 헛된 희망이었음을 지금 생각해보면 희망고문이었구나 하고 반추해본다. 그러니까... 나의 입덧은 임신과 함께 시작해 임신이 끝나기 직전까지 함께 한... 최악의 파트너였다고 할까?


어쨌든 임신을 처음 확인하게 된 건 올해 초, 평소 시누이와 가깝게 지내던 나는 당시 글을 정말 많이 쓰는 중이었는데 그때 당첨된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러 간 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시누이와 먹성이 비슷하다는 걸 깨닫고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떡볶이만 먹고 방청을 하러 갔다. 그리고 그날  조금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꿈이 내가 처음 꾼 밤쭈 태몽이 아닐까 싶다.


무려 백종원이 나오는 꿈.


백종원 아저씨가 우리 집 부엌에 서있는 것이 신기했다. 백종원 아저씨는 부엌에서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더니 소파에 앉아있던 내게 다가와 '어서 먹으라'며 접시를 내밀었다. 접시 위에 담긴 그것은 음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주 노오오오란 황금 덩어리가 접시 위에 환한 빛을 내며 놓여있었으므로. 먹고 싶지 않다고 접시를 밀어내니 '이거 안 먹으면 후회할 거야' 특유의 말투로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나를 채근했다. 먹기 싫었는데... 골목식당 빌런 편에 나올법한 무시무시한 말투로 꼭 먹으라고 하니 꾸역꾸역 자리에 앉아 황금 덩어리를 전부 먹었다.


다 먹고 잠에서 깨보니 어느덧 새벽. 남편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이라 씻고 있었고 시누이도 다시 시댁으로 가야 하니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뭔가 알싸하게 온몸을 휘감는 기분이 들어 남편과 시누이가 나가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집에 있던 임신 테스터기를 모두 들고서. 그렇게 선명하게 찍힌 두줄을 보며 나의 임신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확인한 주수는 대략 5주 정도. 아기집이 보이지만 아기는 보이지 않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분명한 건 내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임신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와주지 않았던 터라 체념 반, 실망 반으로 있었던 우리에게 다가온 기적. 밤쭈의 태명은 남편의 애칭을 따서 만든 밤톨군 주니어, 밤쭈가 되었다. 밤쭈는 5주 만에 자신의 존재를 보여줬고 냄새에 둔감하던 나를 초예민 보스로 만들어줬다.




임신 10주 차, 12주의 기적을 기다리며


임신 6주 차부터 시작된 입덧은 처음엔 스멀스멀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고 거품이 가득한 침이 계속 입 안에서 생겨났다. 바다낚시 갈 때 뱃멀미도 안 하는 내가 멀미 증상이라니! 입덧은 안 할 거라며 방심하고 있었던 나에게 닥친 이 시련은 나의 멘탈을 마구 흔들어놨다. 처음엔 울렁거리는 증상으로 그다음은 밥 냄새가 코끝을 스치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웁, 웁! 밥 안 먹을래!' 맛있게 새 밥을 들고 내게 다가오던 남편에게 손사래를 쳤다. 깜짝 놀란 남편은 밥그릇을 가져오다 바로 유턴! 시원한 얼음에 찬 물만 들이켜고 싶어 졌다.


가라앉겠지 하던 입덧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냄새도 입덧을 더 심하게 만들었다. 불쌍한 남편... 덕분에 남편은 1일 2샤워를 필수적으로 해야 했다. 나를 보러 들어오려면 무조건 싹 씻은 후에 들어와야 그나마도 덜했으며, 한방샴푸를 쓰던 우리는 나의 입덧으로 샴푸도 모두 바꿔버렸다. (한방 샴푸 냄새가 너무 세게 느껴져서 다 토했다는...) 그리고 남편은 거실에서 밥을 먹지 못하고 컴퓨터 방에서 방문을 닫고 혼자 후다닥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점점 심해지는 입덧 때문에 나의 건강을 염려하고 계시던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어머님은 임신한 사람들은 다 아는 병이라며 위로해주셨고 폭풍 입덧하는 며느리 옆에서 열심히 챙겨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입덧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남편도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혼자만의 괴로움. 심한 입덧 탓에 다이어트로도 빠지지 않았던 살들이 허벅지며 팔뚝이며 전부 빠졌고 수분도 너무 많이 빠져 몸무게는 한 달 만에 10킬로 가까이 빠졌다. 겨우 먹었던 냉면도 게워내느라 찬물 외엔 아무것도 마실 수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 나오려고 이러는 걸까?


오히려 더 노력할수록 입덧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처음엔 헛구역질로, 그다음은 멈추지 않고 나오는 침으로, 그다음은 온갖 냄새를 다 맡게 하며 위액까지 게워나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입덧은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시어머니는 입덧에 좋다는 음식이며 과일 등등 챙겨주셨지만 쉬이 입덧은 가라앉지 않았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야생마 같이 나의 입덧은... 거의 모든  게워내 주었으니까. 따뜻한 물을 마셔도 게워내니 내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내게 임신 12주의 기적은  이야기 같았다. *12주가 지나면 입덧이 서서히 가라앉는다고 하는데, 그걸 보통 #12주의기적 이라 불린다.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40주까지 설마, 입덧을 계속하진 않겠지?

이 괴로움의 끝은 출산인걸까? 입덧을 잠재워줄 수 있는 신박한 무언가가 필요해.


살은 점점 빠지고... 몸에 수분이 날아가는 만큼 내 멘탈도 유리알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얼음을 동동 띄운  보리차  , 포도맛 얼음이 들어있는 포도아이스크림, 그리고 입덧하느라 빠져나간 수분과 영양분을 채워주는 수액...  삼박자로 겨우 입덧과 씨름하며 이겨냈다. 그래서 12주의 기적은? 내겐 없다고만 생각했다. 잠시나마 찾아온 평화로운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현재는 낚시꾼 2세 밤쭈 이준이가 생겨 낚시는 쉬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저희 이야기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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