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자씩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육아는 이제 내 삶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 중심으로 일상을 보내다 보니 문득문득 내 안에서 무언가가 소리치며 울컥 인다. 답답하게 만드는 건 코로나가 한몫했다. 아이를 안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상상해왔지만 현실은 정반대. 나가기만 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집콕을 유지하며 지내온지도 1년의 시간이 되었다. (아이가 9월 2일에 돌을 맞이해요!)
1년 동안 남편과 나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매일매일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으쌰 으쌰 힘을 내가며 살고 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의 감정은 멘탈이 약해진 나에겐 쥐약이었다. 하루는 자는 아이를 보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기어코 눈물이 왈칵하고 쏟아졌다. 슬픈 영화를 본 것도 아니었고 집안에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온한 오후였다. 베란다 창문을 무심코 열였다가 제법 달라진 공기가 바람을 타고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코끝을 스쳐가는 계절의 냄새가 집에만 있던 나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잠든 낮잠 시간에 소리 내지 않으려 입을 틀어막고 꺼이꺼이 울다가 아이가 잠에서 깨 나를 찾는 소리에 눈물을 닦고 달려갔다. 눈물로 엉망이 되어버린 내 얼굴을 작은 손으로 만지작 거리는 아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 뜨였다. 환하게 오롯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 아들의 얼굴이 눈부셨다. 막 유치가 나오기 시작해 활짝 웃으면 토끼 같은 이가 보이는 아이의 미소가 날 순식간에 녹아내리게 했다.
'그래,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잠든 사이 묵직해진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왔다. 우느라 퉁퉁 부어버린 내 얼굴을 뒤로하고 아들과 동요를 틀어놓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곤지곤지~ 하느라 정신없는 아들의 그 앙증맞은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는 아이의 환한 미소가 짙게 드리워졌던 우울의 그늘을 저 멀리 걷어내는 기분이었다. 매일 쓰고 있는 아들의 육아일기를 펼쳐놓고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아들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날짜별로 올렸다. (인스타그램 피드가 밀리면 한 번에 여러 개 올리는 날이 다반사다...)
그리고... 나를 위한 글쓰기도 잊지 않기로 했다.
평소에 너무나 좋아하는 공간이자 독립서점 오키로북스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워크숍을 등록했다. 매일매일 500자씩 주어진 글감에 맞게 쓰는 것이 미션인데, 글감이 주어지고 다음날 오후 1시까지 마감을 하면 (단, 1분 1초 늦어선 안된다) 워크숍 담당자(작거님)가 글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다. 오히려 매일 육아일기를 써오던 나에겐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너무나 즐겁고 질리지 않으니 육아를 하다가도 잠시 쉬는 틈에 휘리릭 쓸 수 있는 이 워크숍이 육아로운 일상을 즐겁게 만들기 시작했다.
육아로운 일상을 슬기롭게 보내는 법은 별다른 게 없다. 거창한 목표도 필요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해서 나의 시간을 옹골차게 채워보는 것. 나를 잃어버린 채로 육아를 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처음엔 쉽지 않고 그럴 여유 조차 없는 날들도 많았지만 아이와 함께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보니 조금씩 눈에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그 사이사이 비는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 짧은 시간이라도 나를 위해 온전히 써보는 것.
이런 작은 행동의 변화가 조금씩 나를 우울이라는 수렁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물론, 가끔씩 다시 가라앉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너그러움과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나씩 하나씩 나의 속도로 멈추지 않고 가는 것. 거북이는 멈추지 않고 끝까지 종착역을 향해 자신의 속도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나의 삶이 아이를 낳기 전과 많이 바뀌었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멈추지 말자. 더딤이 날 힘들게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다짐하며 매일 500자씩 글감을 보고 나의 일기를 써본다.
<1일 차, 핑크쟁이김작가의 500자 일기>
핑크, 낚시, 덕후.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는 이 세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핑크는 내 시그니처 컬러이다. 화사한 핑크색을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사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여기서 포인트는 하늘 아래 같은 핑크는 없다는 것! 핑크도 연핑크, 진핑크, 형광핑크, 파스텔 핑크… 종류가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 딸기우유 핑크를 제일 좋아한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움이 묻어나기 때문인데, 핑크색 굿즈를 갖고 있으면 근심 걱정하던 것들이, 스트레스들이 나를 짓누르는 압박감 같은 것들이 사라짐을 느낀다. 같은 제품이라도 색상을 고를 수 있다면 핑크로 선택한다.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와 브런치, SNS. 고민 끝에 글 쓰는 작가, 핑크색 좋아하는 덕후.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온라인 상에서 나의 부캐는 바로 핑크쟁이김작가. 핑크색 관련 굿즈를 수집하고 소개하면서 소통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하는 낚시도 장비들을 핑크로 맞출 정도로 애정 하는 중! 아이 키우면서도 핑크 고집은 여전하다. 젖병, 아기 옷, 장난감 등도 같은 제품이면 핑크! 아이가 호불호가 생기기 전까지는 핑크 육아템들로 꾸며주고 싶다.
내일모레 마흔인데 아직도 그렇게 핑크가 좋냐고 묻곤 한다. 대답은 항상 똑같다.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그니처인데,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요!^^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주 오랜만에 아기랑 떨어져 낚시를 하고 온 이야기들을 엮는 중입니다!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핑크쟁이김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pinkauthor
핑크쟁이김작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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