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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Oct 10. 2019

언니의 임신 소식이 전해준 것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친한 언니가 임신을 했다. 결혼 14년 차, 8살 이란성쌍둥이의 엄마인 언니는 올해 42살이다. 언니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어렵게 시험관을 통해 쌍둥이를 가졌다. 임신 5개월 만에 자궁이 열릴 뻔했고, 출혈이 계속 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끝끝내 쌍둥이를 낳았고, 그 이후로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언니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다.


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나를 돌아봤다. 



남편과 결혼한지도 3년 차에 접어드니 주변에서는 우리의 안부 대신 있지도 않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관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덩달아 부담감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혼자 전전긍긍하며 산부인과를 다녀오기도 하고 검사도 받았다. 다행히 진단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3년 차면 이제 생기는 게 맞다며 자꾸만 임신과 아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간혹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듣는 임신에 대한 질문은 굉장히 압박적이면서도, 불쾌하고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당신은 그럼 결혼이나 하고 그런 걸 물어보지? 너나 잘하시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었다면 조금 상황이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역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 와중에 언니의 임신 소식은 나에게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내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언니는 무엇보다 조급함을 버리라고 했다. 언니도 결혼하고 나서 2번의 유산을 겪었고,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을 눈물로 버티며 가슴을 도려낸 듯한 상처가 아물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어떤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았고, 그 시기가 언니에겐 가장 암흑기였다고 한다.


언니는 그때 깨달았다. 세상의 전부는 아기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를 원망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집착이 심해질수록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는 것을. 그때부터 언니는 조금씩 형부와 여행을 다니고 즐겁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가끔 숙제하는 마음으로 시험관을 하러 갔다고 했다. 10번의 도전 끝에 10번째에 이란성쌍둥이를 임신했다. 조산으로 태어난 쌍둥이들은 한동안 인큐베이터 안에 꼼짝없이 있어야 했지만, 언니는 아이들을 믿고 기다렸고 어느덧 그 아이들은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며, 언니는 놀이터에 흙장난을 하며 씩씩하게 걸어오는 쌍둥이들을 데리러 갈 때마다 난색을 표하곤 했다. 이거 봐, 누가 그때 그 꼬맹이라고 생각하겠어. 아무도 모르는 거더라, 인생이라는 게.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이지만 천방지축이야, 정말! 쌍둥이를 같이 데리러 갈 때마다 언니의 난감한 표정과 쌍둥이 조카의 장난기 어린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고 있던 내게 언니가 손을 잡더니, 

'아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너의 삶과 인생을 즐겨. 충분히, 아무 생각나지 않게.'

언니의 말에 가슴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던 뭉텅이들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다. 언니의 손은 따뜻했고, 다른 한 손 끝에 닿은 언니의 배에서는 세 번째 조카의 태동이 느껴졌다. '이모도 언젠가는 너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아가를 만날 수 있겠지?' 말이 끝나자마자 힘찬 발차기가 느껴졌다. 왠지 언니 뱃속에 있는 조카가 '이모 걱정 말아요! 힘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언니는 자연임신이 힘든 몸이었지만, 아이를 갖는 기적을 몸소 느끼고 있다. 난 아직 삼십 대 중반이고 아이를 가질 생각은 있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생긴다면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두렵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함이 더 커진다. 누군가를 낳고, 키우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반대로 남편과 내 인생을 지켜나가기에도 버거운 삶 속에서 과연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게 가당 키나 할까. 



남편과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한다. 우리의 사랑을 꼭 아이로 귀결시켜야 할까에 대한 질문에는 서로 같은 대답을 한다. 사랑의 결과가 아이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집착은 또 다른 집착을 낳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 가보자고. 


집착이 아닌,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충만한 남편과 나 사이에 생겨나길.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누구보다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맞이해주자고. 


부디, 나의 집착으로 인해 오로지 '임신'이 삶의 마지막 목표가 되지 않기를.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주부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며 사랑을 확인하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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